김영랑 시인 34년만에 다시 ‘망우공원’으로
중랑구 재이장하고 추모공간 더해
근현대인물 추가안장 가능성 커져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 테요 /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인생이 가을같이 / 익어가오 / 자네 소리 하게 / 내 북을 치지’ ‘나는 독을 차고 / 선선히 가리라 / 막음 날 내 외로운 / 혼을 건지기 위하여’
서울 중랑구 망우동 산57-1.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이다. 관리사무소 겸 전시실 찻집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중랑망우공간을 지나 숲길을 따라 10분쯤 걷다 보면 왼편으로 시야가 확 트이며 새롭게 조성한 묘역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8월 19일 부인 안귀련 여사와 함께 묻힌 시인 영랑 김윤식의 묘다.
기성세대에게 친숙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비롯해 다소 낯선 ‘북’과 ‘독(毒)을 차고’까지 천지인을 뜻하는 두개 시비와 묘비에 적힌 시구(詩句)가 반갑다. 시비 옆면에 적힌 작품 제목 ‘오메 단풍 들것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에서는 남도 사투리도 느껴진다.
10일 중랑구에 따르면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영랑이 34년만에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돌아왔다. 1954년 망우리에 안장됐다가 1990년 부인과 함께 경기도 용인시 천주교공원묘지로 이장했는데 지난 8월 19일 유골을 화장해 망우공원에 영원한 둥지를 틀었다.
‘북의 소월, 남의 영랑’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시구로 친숙한 시인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190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영랑은 휘문의숙(현재 휘문고)에 재학 중일 때 3.1운동에 참여했고 강진 장날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 구속돼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복역했다. 일제 말기에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삭발령을 거부해 1941년부터 광복까지 절필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구 신당동 친척집에 은신해 있던 중 포탄 파편에 맞아 사망했고 정부는 지난 2008년 금관문화훈장에 이어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시인이 공동묘지에서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한 망우에 되돌아오기까지 여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유족들은 여러해 전부터 이장을 희망했지만 지난 1973년 폐장된 이후 신규 매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구는 “서울시 관계 부서에 지속적으로 요청해 지난 1월 조례가 개정됐다”며 “심의위원회를 거쳐 매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재이장은 바뀐 조례를 적용한 첫 사례다. 중랑구는 재이장이 확정된 이후 지난 5월부터 석달에 걸쳐 묘지 기반을 정비하고 추모공간을 조성했다. 지난달에는 추모공간 준공식과 함께 추모식을 열었다.
누구보다 주민들이 시인을 반겼다. 묵동 주민 전 모(46)씨는 “공원이 유명해졌다고 듣기는 했는데 재이장을 보면서 그 위상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웃 상봉동에 사는 황 모(34)씨는 “앞으로 다른 위인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원으로 발전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중랑구는 지난 2020년 서울시에서 공원 관리권을 위임받은 뒤 방문객들이 보다 편리하게 근현대 인물을 만나도록 돕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망우공간 개관에 이은 주차장 확대, 무료 순환버스 운행, 안전보행로 확충 등이다. 최근에는 수목전문가를 채용해 숲이 우거지고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공원으로 가꾸고 있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또 한분의 독립운동가를 모시게 돼 참으로 기쁘다”며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궁금해하는 누구나 찾아와 근심을 잊고 편안하게 역사와 삶에 대해 돌아보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