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사퇴 압박’에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으로 돌파
지주 회장, 자회사 임원에 대한 인사권 축소하기로
부당대출 사태 ‘지주회장 제왕적 권한에 기인’ 판단
이복현 원장도 작년 ‘본질적 문제의식 있다’며 언급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국내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에서 제왕적 지주회장 권한으로 꼽혀온 계열사 임원에 대한 인사권을 축소하기로 했다. 전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로 코너에 몰린 임 회장이 정면 돌파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우리금융그룹이 꺼내든 ‘지배구조 개편’ 카드는 다른 금융지주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임 회장은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진 가운데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온 대책을 내놓았다. 국감장은 마치 우리금융그룹의 제도개선안을 발표하는 자리가 됐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회사 임원 선임시 지주회장과 합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느냐”는 잘문에 임 회장은 ”이번 사건(전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의 한 원인이기도 한 회장의 권한과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룹 전체 개혁을 위해 자회사 임원 선임과 관련한 사전합의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자회사 임원 선임 과정에서 지주사와 협의하는 사전협의제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금융지주사들도 비슷한 규정을 정관에 명시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이 다른 계열 금융회사의 임원 인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금융에서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이 은행뿐만 아니라 계열사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졌던 이유가 회장의 제왕적 권한에 주로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 인사권 축소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금융은 자회사 임원 192명을 선임할 때 자회사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지주 회장은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 의장으로 자회사 대표이사 선임에만 관여할 예정이다.
임 회장은 사퇴 의사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기업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고, 경영진의 각성과 쇄신이 필요하다”며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지금은 조직안정과 내부통제 강화, 기업문화 혁신 등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해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임 회장은 “인사 개입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이번 부당대출 사건을 계기로 기업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내부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이에 대한 경영진의 각성, 쇄신이 필요하다는 점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제가 잘못해서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의 이 같은 지배구조 개편은 지난해 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에 나와 지적했던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문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 원장은 당시 금융당국의 금융권 인사개입에 대한 질문에 “저희가 구체적인 누구를 임명해야 한다는 어떤 그런 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며 “다만, 취임이 되면 사실상 정년 등 나이가 유일한 제한이라는 식의 말이 나올 정도로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제왕적 회장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이에 대한 본질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경쟁을 더 유도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감독당국은 경쟁 활성화가 CEO 인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임 회장은 회사 임원 친인척의 부당대출을 막기 위해 그룹사 전 임원의 동의를 받아 친인척에 대한 신용정보를 등록시키겠다고 밝혔다. 대출 취급 시에 처리 지침을 마련해 사후 적정성 검토 등 엄격한 관리 프로세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되는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해 직속 기관으로 윤리 경영실을 두고 외부 전문가를 수장으로 감시 기능을 갖춘 내부자 신고 제도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부적정 여신에 대해 계열사 전체가 정보 교류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기로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주요 금융지주 회장으로는 처음으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임 회장이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의 국감 출석이라는 선례가 만들어진 만큼 향후 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증인 채택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임 회장의 대응방식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