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로 허덕이는 내수 살리자” … 완화적 통화정책 '첫발'
한은, 물가·환율 안정세, 내수부진 장기화에 기준금리 인하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 … 당장 실물경제 파급은 제한적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전환의 첫발을 내디뎠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높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는 긴축적 통화정책이 길어지면서 민간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11일 오전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행 연 3.50%에서 0.25%p 인하해 3.25%로 낮췄다. 한은은 2021년 8월(0.75%)부터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해 지난해 1월(3.50%)까지 빠르게 긴축을 시행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후 높은 수준의 금리를 역대 최장 1년 9개월 가까이 유지했다. 따라서 이날 결정은 향후 통화정책을 보다 완화적으로 가져가는 신호로 해석된다.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고금리 장기화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계 및 기업대출 가중 평균금리는 2022년 말 5%대 후반대까지 치솟았다. 신용도와 담보가치 등에 따라 최고 6~7%대 대출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제2금융권은 최고 두자릿수 금리까지 상승했다. 2021년 부동산시장이 침체하면서 증권사와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시행된 부동산PF가 부실화되는 등 금융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줬다.
가계와 기업의 고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와 투자 여력도 줄었다. 기업 설비투자는 2021년 이후 올해 2분기까지 14분기 동안 8개 분기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2.0%)와 2분기(-1.2%)도 설비투자는 후퇴했다. 투자 감소는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낮추는 것이어서 국민경제의 균형 성장에 부정적이다.
민간소비도 악화했다. 2021년과 2022년은 코로나19 소비절벽에서 벗어나는 기저효과로 상승세를 보였지만,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가계의 이자부담 증가 등으로 지난해 2분기(-0.3%)와 올해 2분기(-0.2%)는 마이너스 성장했다. 수출이 뒷받침되면서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1.3% 깜짝 성장했지만, 2분기(-0.2%) 다시 역성장했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내수부진에 대해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우려를 나타냈다. KDI는 10일 발표한 ‘경제동향 10월호’에서 내수 경기가 11개월째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KDI는 보고서에서 “고금리 기조로 소매판매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건설투자를 중심으로 내수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깊어지자 한은도 통화정책 전환에 나섰다는 평가다. 신성환 한은 금통위원은 지난달 25일 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집값이 100% 안정된 후에 기준금리를 인하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내수 부분을 보면 (금리를) 인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은이 이날 기준금리를 0.25%p 내렸지만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2~3분기 이후에 실물경제에 파급효과를 미친다는 분석이다. 다만 지난달 미국 연준이 정책금리를 0.50%p 내리는 등 국제금융시장에서 시장금리가 안정화되는 추세여서 향후 기업과 가계의 이자 부담은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는 한국 채권시장이 세계국채지수(WBGI)에 편입된 점도 금리 하향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면 가계 이자부담은 연간 3조원 가량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한편 향후 한은 통화정책은 점진적인 완화로 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물가와 외환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화되긴 했지만, 중동정세 등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부동산시장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면, 서울 집값은 0.83% 상승한다”는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