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탐방 | 요트 같은 노르웨이 어선에 오르다 ①
선원마다 방 1개씩 배정하고 남아…공용방·영화관도
고등어잡이배 정원 12명, 방 16개 … 비린내 없이 쾌적
한국 고등어배는 개인 방 없어 … 화장실도 공용 1~2개
부산은 한국 수산업 전초기지 중 하나다. 자갈치시장 인근에 있는 부산공동어시장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부두에 하역하고 경매하는 국내 최대 규모 산지 위판장이다. 출항을 앞두거나 하역을 마치고 쉬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배에 올라보면 짙은 기름냄새와 비린내, 좁은 선실과 하나 밖에 없는 공용 샤워실·화장실의 열악한 수준 등에 놀란다. 선박을 보호하는 페인트도 벗겨지고 기관실엔 먼지도 많다.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전국 포구에 선박검사를 위해 정박한 어선에 올라가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선은 선원들이 고기잡는 작업장이면서 쉬는 공간이고 잠을 자는 침실인데 이런 배를 타고 바다에서 보름씩 조업하겠다고 하는 젊은이들이 나올까.”
노르웨이 어선은 다르다는 말을 듣고 8월 하순 노르웨이로 향했다.
◆배마다 쿼터량 정해져 무리한 조업 안 해 = 8월 21일(현지시간) 오후. 고등어잡이로 유명한 노르웨이 올레순에서 잡아온 고등어를 가공공장에 하역하고 있는 어선에 올랐다. 가공공장은 부두 안벽에 가까이 있었다. 피쉬펌프로 어창에 있는 고등어를 가공공장 컨베이어벨트로 바로 하역했다.
고등어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크기별로 자동 세척·선별돼 포장까지 마치고 유통에 들어갔다. 노르웨이에서 많이 먹지 않는 고등어는 수출용 생선이다. 한국 일본 등 해외로 수출한다. 한국은 매년 3만6000~4만5000톤 규모 노르웨이 고등어를 수입한다. 국내 연근해에서 잡는 고등어 생산량의 35~45%에 이른다.
3540톤급 규모의 어선은 길이만 74m에 달했다. 2015년 취항한 배는 건조가격 2억5000만크로네로 한화 317억원 수준이다. 한국의 고등어잡이는 120~300톤급 배 6척을 고기잡이(본선, 등선)와 운반으로 역할을 나눠 한 개 팀(통)으로 운영하지만 노르웨이는 3000톤급 한 척으로 조업한다.
한국의 고등어잡이는 한 달 20여일 바다에 머물며 조업(본선, 등선)하고, 운반선이 오가며 생선을 하역한다. 그물을 둘러쳐 잡는 선망 방식으로 조업하는 본선 1척에는 25명, 등선 2척에는 각 8명씩 16명, 운반선 3척에는 각 10명씩 30명 등 한 통은 70~75명 선원으로 구성된다.
노르웨이는 어창에 고등어가 차면 가공공장으로 와서 하역하고 10일에서 14일 정도 조업한다. 배마다 잡을 수 있는 양(쿼터)을 정해 놓아서 무리해서 조업할 필요가 없다.
1978년부터 배를 탔고 1994년부터 선장을 했다는 아틀레(62세)는 “조업 중에도 정부와 계속 소통하며 얼마나 잡는지 보고한다”며 “정부 전산시스템에도 조업기록이 남기 때문에 우리가 더 잡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장은 불쑥 찾아간 한국의 손님들에게 배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어창과 작업장에서는 생선 냄새가 좀 났지만 선실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바다에서 조금 전 부두에 들어와 하역작업 중이었지만 배는 청소 상태가 깨끗하고 좋았다. 고등어 등 생선 찌꺼기가 없었고 엔진룸도 쌓인 먼지를 보기 어렵게 깨끗했다.
배에 정원은 11~12명이지만 방은 16개다. 각자 방이 있고, 방마다 텔레비젼(모두 삼성전자)과 침대 소파 화장실 샤워실이 있었다. 공동 헬스장과 영화관이 있었고, 큰 화분도 놓여 있었다. 인터뷰는 공동 응접실에서 진행했다. 배는 그물을 둘러쳐서 잡는 선망과 그물을 끌면서 잡는 트롤 두 가지 방식으로 조업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고등어는 1년에 3300톤, 청어 전갱이 등은 2200톤만 잡을 수 있다. 쿼터양은 정부와 어업인단체가 함께 정한다.
조타실에서 첨단 장치로 물고기가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물을 펼쳐 잡은 후 어창에 보관하며 신선도를 유지한다. 하루~이틀 사이에 가공공장에서 하역하고 다시 조업한다. 선망그물은 800m 길이로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최대 어획량은 1000톤이다. 트롤그물은 500m 길이로 역시 한 번에 최대 1000톤을 잡을 수 있다.
선장은 “트롤 방식은 그물을 끌 때 고기가 그물 사이에 끼어 품질이 나빠진다”며 “선망 방식으로 잡으면 고기상태가 좋아서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선장은 다시 조업하기 위해 출항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동했다. 하역작업은 두 시간 정도에 끝났다.
1987년부터 선원을 했다는 항해사 피터도 쿼터량 등 정부와 약속한 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 정도 잡았는지, 조업위치는 어디인지, 언제 하역할 것인지 등에 대해 정부와 계속 공유한다”며 “그렇게 해야 가공공장에서 하역하고 작업하는 일정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업위치는 투명하게 공개돼 어업이나 수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도 알 수 있다. 그는 어업인으로서 자부심도 컸다. 피터는 “노르웨이에서는 어부라는 직업을 좋아하고, 어부가 되기 위한 경쟁도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하역작업을 마친 가공공장 매니저 브리안은 “어부 연봉은 최소 10만달러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5명 타는 대구잡이 어선도 선원공간 커 = 고등어잡이 배는 좋다고 들었지만 배가 크니까 깨끗하고 좋은 게 아닐까? 어업박람회 노르피싱이 열리고 있는 바이킹의 도시 트론하임 연안에 정박된 중소선박에 그냥 올라갔다. 올레순으로 떠나기 전 21일 아침시간을 이용했다. 우산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비가 내렸다.
길이 15m, 폭 8m의 130톤급 강선(철선)에는 어선을 건조한 조선소(비크나스리펜) 사장 리나르 엥게스빅이 있었다. 130톤급이면 한국의 고등어잡이 본선 규모와 비슷한 무게다. 선박 정원은 5명이다. 한국의 고등어잡이 본선에는 25명이 탄다.
이 배는 로포텐에서 대구잡이를 하는데 박람회에 참여하기 위해 트론하임에 왔다. 로포텐은 대구잡이로 유명한 곳이다. 대구조업은 주로 1~4월 하는데 하루 3~4시간 정도 한다. 여름에는 이틀 정도 조업한다.
12해리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연안에서 조업하는 이 선박은 선실에 2층 침대 두 개가 있었고, 샤워실과 화장실이 선실마다 배치돼 있었다. 엔진룸과 어창도 청소가 잘 돼 있었다.
트롤과 자망 방식으로 조업하는데, 선박 우현에서 3명 정도가 생선 피를 빼고(방혈) 어창으로 보낸다. 어창 수온을 낮게 해서 선도를 유지한다.
어선가격은 4500만크로네(57억원), 건조기간은 2만1000시간 걸렸다. 비크나스리펜 조선소에서는 1년에 3척 정도 만드는데, 이 정도 규모 어선은 노르웨이에 100척 정도 있다. 어선을 만드는 조선소는 로포텐, 트론하임 인근, 베르겐 3곳에 있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제2도시로 수산업 등 해양산업이 발달했다.
리나르 엥게스빅는 “100여척 선박 중 10년 미만 선령 10%이고, 20~40년된 노후선박 많아서 선박건조 수요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크나스리펜 조선소는 24m 길이 배도 만들 수 있지만 주력은 15m 크기다. 배 크기 마다 적용하는 규제도 다르다.
학생들이 타는 실습선에도 올라갔다. 길이 35m, 폭 10m로 474톤 규모다. 선실에서는 학생들이 2층 침대를 사용한다. 선실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
수산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17세)은 “수산업을 할 생각”이라며 밝게 웃었다. 학교에서 양식과 조업 실습을 한 후 진로를 선택한다. 어선이 아닌 상선을 탈 수도 있다. 노르웨이에서 수산업 무역을 하는 가이드는 “노르웨이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문화”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연안에서 조업하는 130톤급 배도, 학생들의 실습선도 고등어잡이 배 정도는 아니지만 거주공간과 작업환경이 잘 갖춰져 있었다.
제주지역 선원들의 노동조합인 제주선원노련 김동윤 위원장은 10일 “한국에서 고등어잡이 선망 어선은 배 상태나 작업조건이 다른 어선에 비해 좋은 편”이라며 “선망 어선을 기준으로 한국어선을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선망어선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복지공간을 갖춘 한국 선망어선이 한국에서는 그나마 좋은 어선이라는 말이다.
그는 “중국 양자강 인근까지 가서 30~40일 조업하는 저인망 어선 등은 감옥보다 좁은 공간”이라며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고 생활하면 힘들고 예민해져서 사고가 날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올레순(노르웨이)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