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적대적 두 국가관계’에서의 대북지원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관계이며 전쟁 중에 있는 두 개의 교전국가간 관계’라고 못박았다. 북한이 민족과 통일이라는 색안경을 걷어내고 남북관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사실상 교전국가 관계라는 정의는 지금이 휴전상태라는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이는 남북한이 그동안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에서 항구적 적대관계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상황 변화는 우리 대북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남북기본합의서의 폐기는 불가피할 것이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지난 30년간 남북관계를 규율해 온 문서였다. 이 문서에서 남과 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마찬가지로 통일을 전제로 한 당위적 대북 인도지원 논리의 폐기도 피하기 어렵다. 1995년 대홍수로 초래된 식량난으로 북한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내년이면 이로부터 30년이 된다. 북한은 인도지원 역사에서 최악의 수원국이라고 할 수 있다. 폐쇄적인데다가 비민주적이고 투명하지도 않다.
하지만 남한 시민단체들은 인도지원 원칙들이 훼손됨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은 하나다’라는 민족서사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통일서사 때문에 그러했다. 이 두가지 서사 때문에 남한 사회에서 대북지원은 당위가 되었다.
대북지원 사업의 딜레마
현재 남북관계에서 대북지원은 계륵과 같다. 지원을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원을 안할 수 없는 것은 분단현실 때문이고 지원을 할 수 없는 것은 북한 체제 때문이다.
북한의 ‘두 개 국가론’은 민족서사와 통일서사를 부정한다. 따라서 대북지원은 더 이상 당위가 아니게 되었다. 그동안 인도지원의 당위성 때문에 북한의 잘못을 묵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제 북한에 의해 인도 지원의 당위성이 부정되고 있다
사실 그동안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는 당위와 지원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가 충돌해 왔다. 하지만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 문제다. “원칙 준수 없이 지원 없다”라는 말이 당연해 보여도 현실에선 쉽지 않다. 분쟁국가에 물자를 지원하는 경우 이 물자들이 반군단체에 흘러가 그들을 강화시키지만 지원을 중단할 경우 반군들의 수탈로 주민들이 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일정정도 지원이 양해되는 경우가 있었다.
인도지원에는 긴급구호와 개발지원이 있다. 긴급구호는 식량 의약품 등 긴급하게 필요한 물자를 단순지원 하는 것이고 개발지원은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긴급구호사업은 긴급한 필요에 부응하지만 단순 반복적이고 축적되는 것이 없다. 개발지원 사업은 수혜자의 주체적 참여가 핵심이다. 그래서 이 사업은 장기적으로 추진되고 수혜자와 공여자의 고차원적 협력이 요구된다. 지원의 당위성이 약화됨에 따라 인도지원과 개발지원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지원 사업도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대북지원은 남한에게 있어서는 숙명이나 마찬가지다. 분단과 통일의 당위성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이웃한 빈곤국가에 대한 지원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개발국이 빈곤의 함정을 벗어나는 데는 몇 세대에 걸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앞에는 대북지원을 위해 지금까지 보낸 시간보다도 더욱 긴 시간이 놓여있다.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준비해야 한다.
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