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하는 미국경제, 따라올 선진국이 없다
G7 대비 더 빠른 경제성장, 더 강한 회복탄력성 … 이코노미스트지 “미국 경제적 미래도 낙관”
“미국은 가까운 미래 다른 주요 산업국가들보다 느린 성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경제가 쇠퇴해 일본과 유럽에 추월당하고 있다는 우려가 비등했던 1992년, 미국 대통령 직속 ‘경쟁력정책위원회’가 보고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일본은 오랜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유럽의 경제성장은 주춤했으며, 미국은 인터넷 부상에 힘입어 짧은 호황을 경험했다.
물론 1990년대 이후 미국경제는 닷컴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발 실업률 급증, 그리고 최근에는 인플레이션 급등과 같은 격변을 겪었다. 하지만 지난 30여년 미국경제는 그 어떤 선진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에서 더 강하게 반등했다.
1990년 미국은 G7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약 절반에 달한다. 현재 미국의 1인당 경제생산량은 서유럽과 캐나다보다 약 40%, 일본보다 60% 더 높다.
미국의 성과는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20년 초부터 미국의 실질성장률은 10%로 나머지 G7국가 평균의 3배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대규모 신흥국을 포함한 G20국가 중 생산과 고용이 팬데믹 이전 기대치를 상회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4일(현지시각) 인터넷판 특별리포트를 통해 미국 경제성장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 등을 집중분석했다.
여전히 세계를 선도하는 생산성
미국의 생산성을 주도하는 첫번째 요인은 자본투자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비주거용 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은 GDP의 약 17%로, 유럽 주요국의 비중보다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미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GDP의 약 3.5%로, 이스라엘과 한국을 제외하고 그 어느 나라보다 많다.
비즈니스 역동성으로 묘사되는 미국의 전반적인 경제환경이 두번째 요인이다. 특정연도에 신설되거나 소멸되는 기업 비율인 기업 이탈률(churn rate)은 20%에 육박한다. 대략 절반은 신생기업이고 나머지 절반은 문을 닫는 기업이다. 유럽은 15%에 못 미친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사업자금을 조달하기도, 문을 닫기도 쉽다는 의미다.
파리 비즈니스스쿨인 HEC의 경제학자 안토닌 베르고에 따르면 2005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낸 기업은 P&G, 3M, GE, 듀폰, 퀄컴이었다. 유로지역에선 지멘스, 보쉬, 에릭슨, 필립스, BASF였다. 2023년 미국 상위 5개 기업 중 4개 기업(MS, 애플, 구글, IBM)이 새로 진입했다. 퀄컴은 그대로였다. 반면 유로지역에선 바이엘만 지멘스를 대체했다.
미국 증시가 최고로 군림하는 이유
2000년 말 미국 주식시장에 1만달러를 투자했다면 지난해 말 약 2만7000달러(인플레이션 조정치)를 손에 쥐었을 것이다. 미국이 아닌 글로벌 주식에 투자했다면 약 1만6000달러였다.
현재 미국 주식시장은 전세계 시가총액의 약 61%를 차지한다. 1960년대 최고치에 근접한 수준이다. 미국의 실물경제 지배력이 반세기 전보다 훨씬 낮아졌음에도 증시 지배력은 비슷하다. 미국의 글로벌 주식시장 점유율은 GDP 점유율 대비 2.3배로 역대 최고치다.
이러한 호황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 나라의 주식시장이 다른 경쟁국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첫째는 시장을 구성하는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다. 둘째는 투자자들이 그같은 수익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증시의 뛰어난 기록은 주로 후자의 효과다.
현재 미국의 밸류에이션은 미래수익(forward p/e)의 24배, 유럽은 14배, 일본은 22배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의 높은 배수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애플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등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Seven)’로 불리는 기술대기업의 본거지다. 시장 전반적으로 성장주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유럽에도 거대기업인 GSK 로슈 네슬레 루이비통의 앞글자를 딴 ‘그라놀라(GRANOLA)’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소비자중심기업이다. 미국 기술기업만큼 성장 전망이 높지 않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투자자들은 성장주에 집중했다. 반면 은행업과 같은 많은 구경제는 역풍을 맞았다. 이는 미국 밸류에이션 우위에 기여했다. 투자자들은 또 수익의 많은 부분을 재투자하려는 미국기업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미국주식은 거래하려는 사람이 많아 가격변동 없이 대량으로 매도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선호한다.
그 결과 글로벌 주식시장은 지리적으로는 미국, 섹터별로는 기술주, 기업수준에서는 매그니피센트 7이라는 3가지 포인트에 집중돼 있다. 애플 MS 엔비디아만 해도 MSCI 글로벌지수의 12%를 차지한다.
미국증시에 대한 주요 위협은 AI관련 주식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기업 주가가 비싸지만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 붕괴 직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당시 시스코시스템즈는 미래수익의 125배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기술주를 제외해도 현재 미국의 글로벌 주식 비중은 55%로, 2008년 이후 20%p 올랐다.
셰일혁명이라는 보호막
현재 미국은 하루 약 1300만배럴 원유와 30억㎥의 천연가스를 뽑아올리는 세계 최대생산국이다. 2019년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수입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수출하게 됐다. 지난해 미국은 약 650억달러의 에너지 순흑자를 기록했다.
셰일은 여러가지 면에서 미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했다. 좁게는 수입감소와 수출증가로 미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경제적 효과는 세계 석유시장의 변동성으로부터 미국경제를 보호한다는 점이다.
과거 오일쇼크는 경제불안정의 원인이었다. 특히 1970년대 인플레이션과 성장률 하락이 겹치며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최근엔 달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2022년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전례없이 가스가 넘쳐나는 미국에서는 가격이 약간 상승하는 데 그쳤다.
우려지점 많지만 낙관 이유 더 커
재정건전성을 측정하는 간단한 척도는 GDP 대비 부채비율이다. 미국의 비율은 현재 약 99%다. 미 의회 예산처는 향후 30년 이 비율이 160%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약 157%인 일본의 경우 투자자들이 여전히 국채를 사주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달러의 위상을 고려하면 미국은 아직 여유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재정문제는 임박한 위험이 아니라 만성적 문제”라고 전했다.
양극단의 정치도 경제에 위험을 초래한다. 트럼프는 이민과 자유무역에 반대한다. 두 요소는 현재의 미국을 만든 원동력이었다. 반면 해리스는 유럽을 본 떠 대기업 규제에 집중한다. 경제성장이나 첨단기술 혁신을 위한 최적의 처방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경제적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한 국가의 경제잠재력을 결정하는 궁극적 요소는 생산성과 인구다. 거대하고 경쟁력 있는 내수시장, 세계 최고의 대학, 법치의 신성함 등 미국 생산성의 토대는 확고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설령 트럼프가 백악관을 재탈환하더라도 이러한 기반은 견고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인구통계도 건강하다는 분석이다.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고령화되고 있다. 하지만 유엔은 2100년에도 전세계 인구 대비 미국 인구비중이 현재와 비슷한 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같은 기간 중국 비중은 18%에서 6%로, 유럽연합은 6%에서 3.5%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연령대 중앙값도 중국(61세)이나 일본(53세) 유럽(49세)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45세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누가 미국의 경제적 미래를 비관하는 쪽에 판돈을 건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반대편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