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의 국회의원 푸대접 논란과 의원외교 육성

2024-10-16 13:00:03 게재

‘한중의원연맹’(한중연맹) 소속 국회의원 10명이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런데 일부 국내 언론은 앞선 8월 28일 역시 중국을 방문했던 일본의 ‘일중우호의원연맹’(일중연맹)의원단과 비교할 때 의전상 푸대접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과의 회담 장소가 일본은 정상회담 장소인 댜오위타이(釣魚臺)였던 반면 한국은 외빈 접견장으로 사용되지 않는 타이완팅(臺灣廳)이었고, 일본이 이틀 연속으로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류젠챠오(劉健超)와 만났던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 한·일 국회의원 의전에 차등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정부가 이를 주도한 반면 일본은 정치 권력이 주축이 된 의원외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 중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는 1972년 9월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전격적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물꼬를 텄다. 그리고 외무성 내에서 비교적 소수파였던 이른바 ‘차이나 스쿨’에 속하는 외교관들을 독려해 양국 간의 관계 진전에 큰 역할을 한 것도 다나카와 그 파벌 소속의 국회의원들이었다.

‘일중연맹’의 회장 니카이 토시히로는 1983년 처음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현재까지 41년간 재직 중이다. 또한 역대 최장기간인 5년 2개월 동안 자유민주당의 간사장을 역임한 일본 정계의 원로이기도 하다.

다나카의 파벌에 소속되어 정치를 시작한 니카이는 카네마루 신 자민당 간사장의 훈도를 받아 중국과의 교류를 계속해왔고, 일본 내에서도 친중파 의원으로 불리고 있다.

니카이와 중국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두번에 걸친 대규모 방중이다. 국교 정상화 30주년을 기념한 2002년 9월 국회의원 및 경제인 약 1만3000명, 2015년 5월에는 관광업 관계자 3000명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한편 동중국해에서의 가스전 개발과 관련해 양국 간의 분쟁이 발생하자 중국의 입장에 일정한 이해를 표명했고,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대한 일본측의 협력을 주도하기도 했다.

의원외교 위한 중장기적 관심과 배려 필요

중국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꽌씨(關係)’라고 한다. 꽌씨란 대체로 ‘신뢰와 의리를 기반으로 형성된 상호부조(扶助)의 인적 관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꽌씨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간의 인간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중국인은 역사·문화·사회적 이유로 사람을 잘 믿지 않지만 한번 믿으면 쉽게 이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즉 중국인과의 관계는 단기적인 타산에 휘둘리지 않고 긴 호흡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중연맹’의 국회의원 중에도 중국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니카이와 같이 수십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중국과의 교류를 계속해 온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중국이 한국과 일본의 국회의원에 대해 대접에서 차이를 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종래 한국에서는 의원외교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력과 국제적 지위를 고려하면 적정하게 기능하는 의원외교는 큰 자산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 관심이 많은 비교적 젊은 인재를 정책적으로 발탁해 중장기적으로 의원외교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관심과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최종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