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최상위 상대국에 오른 한국, 신뢰 높여가야
20년 내다볼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 2025년에 마련 … “미국, 동남아를 중국에 잃고 있다” 지적도
올해는 우리나라가 아세안과 대화 관계를 수립한 지 35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35년간 한-아세안 관계는 일취월장 호혜적 협력 파트너십으로 발전해 왔다.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이번 라오스 개최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측은 한-아세안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SP)로 격상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양측은 10월 10일 ‘한-아세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 이는 아세안이 역외 대화 상대국과 맺고 있는 가장 높은 협력 수준을 의미한다.
◆한국, 아세안의 6대 최상위 대화상대국에 = 현재까지 아세안은 국제무대에서 기라성 같은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및 호주 등 다섯 나라하고만 이러한 최상의 협력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 호주는 각각 작년 말과 금년 초 아세안과 대화 관계 수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정상회의를 자국에서 개최한 바 있으며 이들 국가가 아세안에 쏟고 있는 열정은 타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는 아세안과 2010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하였으며 그로부터 14년만에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함으로써 아세안의 6대 최상위 대화 상대국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제 한국은 CSP 공동 성명에 적시된 합의 사항 이행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대아세안 신뢰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보다 앞서 아세안과 CSP를 수립한 5개 아세안 대화 상대국들과 정책 대화를 하면서 아세안의 관심 분야를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수용하는 혁신적 접근 방식을 견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대아세안 외교의 4대 축이라할 수 있는 (1)우리의 인-태 전략 (2)한-아세안 연대 구상 (3) 한-아세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4)인도-태평양에 관한 아세안의 관점 등 4개의 체제가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섬세하고 기민하게 연동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중일, 아세안과 긴밀한 관계속 발전 = 이번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는 또한 지난 5월 서울에서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거의 4년 반 만에 3국 정상 협의체를 복원한 이래 처음으로 한중일 정상이 아세안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동아시아 공동체 발전을 논의한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3국 정상은 5월 정상회의 공동선언을 통해 3국 협력이 아세안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온 점을 평가하고, 3국이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 등 아세안 프레임워크의 맥락에서 3국 협력을 지속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아세안과의 협력 의지를 다짐한 바 있다.
아세안+3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중일 협력을 복원한 것은 향후 아세안+3 협력의 청신호라 할 수 있다. 한-아세안 CSP 관계 수립으로 3국은 모두 아세안과 최고 단계의 파트너십 체제를 완성했다. 아세안+3 협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이번 라오스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우리가 사람 중심의 아세안 공동체 실현을 위해 보통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며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사업을 제시한 것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올 5월 3국 정상 선언과 이번 한-아세안 공동 성명의 구현을 통해 동남아와 동북아가 공동 번영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2030년 세계 4위로 도약 꿈꾸는 아세안 = 올해 라오스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 주제는 “연계성과 회복력 강화”이다. 아세안이 연계성 증진을 통해 역내 개발 격차를 해소하고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경제 활력을 회복하여 성장의 중심 지역으로 다시 세계를 끌어들이는 야심찬 구상이라 하겠다. 라오스는 아세안 내에서도 소국이지만 올해 아세안 의장국 수임 활동을 통해 체급 이상의 외교적 펀치를 날리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아세안은 더욱 역동적이고 자신감에 차있다. 통합 국민총생산 3.8조달러로 세계 5대 경제인 아세안은 2030년 세계 4위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제 아세안 경제는 무시 못할 세력이 되었다. 작년 아세안은 2300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아세안의 경제 성장률 4.6%는 글로벌 평균 성장률 3.2%를 능가한다.
그렇지만 정상회의를 막 끝낸 지금 아세안이 처한 대외적 환경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있다. 11월 5일 미국 대선은 지구촌의 선거다. 그 결과가 전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역내 주요 관심사 관련,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적시해 본다.
◆국제사회에서 역할 더욱 커지는 아세안 = 첫째, 올해 제19차 동아시아정상회의는 미국과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불참함으로서 관심이 저하된 가운데 작년과 마찬가지로 공동성명 채택에 실패하고 의장성명 발표로 마무리 되었다. 올해의 쟁점 역시 유럽과 중동에서 악화되고 있는 지정학적 구도와 수렁에 빠진 미얀마 사태이다.
둘째, 가까운 장래에 미얀마 위기 수습을 위해 두 개의 특별 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인도네시아가 주최하는 아세안 특사 회의와 방콕에서 12월 중순 개최될 “아세안 트로이카 플러스” 회의이다. 국제사회는 더 적극적인 아세안의 역할을 주문한다.
셋째,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이 확대된다. 홍콩, 스리랑카 및 칠레 등 3개의 경제가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 신청을 하였다. RCEP의 역할과 비중 및 협정 완전 이행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넷째, 20년 앞을 내다볼 아세안의 선견지명에 찬사를 보낸다. 아세안은 현재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을 성안 중에 있다. 아세안은 향후 20년 간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민첩하고 적실성 있게 움직이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아세안은 디지털 전환, 지속가능 발전 및 연계성 등 세 가지 핵심 분야를 우선시 한다.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 의 실현은 한국을 비롯한 역외 대화상대국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한국에 관한 한 그 지침서는 바로 이번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한-아세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과 이번 정상회의 후 발표된 “대화 관계 35주년 기념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 일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외교의 절반은 나타나는 것” = 이번 라오스 정상회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불참함으로써 ‘두드러진 부재’를 나타내었다. 10월 3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이 동남아를 중국에 잃고 있다” 제하 분석 기사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2년 연속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건너뛰며 대신 블링컨 국무장관이 미국을 대표한다’고 기술하면서 아래와 같이 날카롭게 분석하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 회귀 전략의 큰 부분은 매년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합류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지역 정치인들에게 의제를 설정하고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미국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미국이 소규모 국가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으며, 중국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미국이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가입한 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외교의 절반은 나타나는 것이라고 농담하였다.”
비슷한 논조로 10월 10일자 자카르타 포스트지는 “아세안 정상회의를 건너뛰는 것은 나쁜 외교정책이다” 제하 사설을 통해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이번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외교적 실책이라고 비판하고 인도네시아는 아세안의 가장 큰 회원국으로서서 그의 두드러진 불참은 이번 정상회의 의의를 반감시키고 아세안이 인도네시아 외교정책의 초석이라는 인도네시아의 주장을 손상시킨다고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아세안이 인도네시아에 그렇게 중요하다면 대통령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최전선에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다.
◆2025년 아세안 의장국 말레이시아 주목 = 한편, 말레이시아에게 내년 아세안 의장국 수임은 60여년 아세안의 여정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0년 전인 2015년 의장국 수임 때 아세안 공동체를 공식 출범시켰으며 내년에는 20년 앞을 내다보면서 아세안의 미래 공유 진로를 설계하는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 채택 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10월 11일 이번 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 폐회식 말미에 열린 내년도 아세안 의장국 인수식에서 내년도 의장국 수임 활동 주제는 ‘포용성과 지속 가능성’으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포용성과 지속 가능성은 지역 차원의 주제인 동시에 글로벌 주제이기도 하다. 한-아세안 CSP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과 이번 한-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에서도 이 주제 관련 사항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유엔안보리 이사국이자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그만큼 내년도 아세안 의장국 말레이시아와의 협력이 어떤 수준이 되어야 하는 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