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실패의 원인이 과연 제도 탓일까

2024-10-18 13:00:00 게재

올해 노벨경제학상 놓고 일각서 비판 제기 … “미 엘리트대 주류경제학자들만의 잔치”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미국 MIT대 교수 다론 아제모을루와 사이먼 존슨, 시카고대 교수 제임스 로빈슨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공동연구 핵심주제는 ‘어떤 나라는 왜 그렇게 부유하고 다른 나라는 왜 그렇게 가난한가’이다. 이들의 지난 30년 연구에 따르면 재산권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보호하며 부패를 제한하는 등 포용적(inclusive) 제도는 경제발전을 촉진한다. 반면 권력집중이 심하고 정치적 자유가 제한되는 추출적(extractive) 제도는 소수 엘리트에 자원을 집중시켜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전자는 장기적으로 성장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저명한 상, 관심이 따르는 연구엔 비판이 따르게 마련. 학계 일각에서 이들의 연구가 ‘이론은 우아하지만 기반이 되는 데이터는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노벨상이 소수 엘리트 학자들만의 잔치였다”는 익숙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론은 솔깃하고 희망 차

16일(현지시각) 미국 온라인매체 ‘복스(Vox)’에 따르면 올해 수상자들의 연구결과는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의 지리 결정론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다이아몬드는 유럽이 아프리카보다 부유한 이유를 지리적 특성으로 파악했다.

수상자들은 지리가 아니라 제도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들의 가장 유명한 논문은 2001년 ‘식민지 기원에 따른 상대적인 발전: 실증조사(The Colonial Origins of Comparative Development: An Empirical Investigation)’로, 포용적 제도와 추출적 제도의 효과를 측정했다.

이를 위해 특정 지역이 특정 제도를 갖게 만드는 어떤 요인을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경제발전과는 무관해야 했다. 계량경제학에서는 이를 ‘도구변수’라고 한다. 이를 통제하면 연구목적인 독립변수(제도유형)의 인과 효과를 분리할 수 있다고 본다.

수상자들은 ‘유럽 정착민들의 사망빈도’를 도구변수로 삼았다. 그리고 호주와 나이지리아를 사례로 삼았다. 두 나라 모두 영국 식민지였다. 과거의 호주가 오늘날의 호주가 된 것은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이 대량이주하기에 상당히 편안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인 정착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구축할 인센티브가 있었다.

반면 나이지리아에서는 말라리아, 황열병 등의 질병으로 수많은 영국인 정착민이 사망했다. 호주와 비슷한 정착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없었다. 백인 정착민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영국은 공정한 제도를 구축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흑인들의 복지는 거의 무시됐다.

수상자들은 식민지 시절 유럽 정착민의 사망률이 높았던 국가들의 경우 오늘날 1인당 소득이 더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제도유형이 결정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됐다.

이듬해 발표된 ‘운명의 역전(Reversal of Fortune)’ 논문도 유명세를 탔다. 이 논문은 앞서의 논의를 더 확장했다. 1500년 유럽 식민지였던 국가들 가운데 도시화 및 인구밀도 기준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나라들이 오늘날 지독히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상자들은 이같은 결과를 낳은 원인이 지리가 아니라 유럽 식민지배로 인한 제도적 변화라고 주장한다.

정부 제도가 중요하다는 수상자들의 세계관에는 솔깃한 부분이 많다. 한국이 지구상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인 반면 동족인 북한은 가장 가난한 나라다. 정부 제도 말고 그럴듯한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수상자들의 이론은 희망적이다. 한 나라가 지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새롭고 더 나은 제도를 도입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연구결과가 흔들리는 이유

하지만 여러 반론이 제기된다. 일리노이대 경제학 교수 데이비드 알부이는 2012년 10월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를 통해 수상자들의 2001년 식민지 기원 논문을 검증했다. 논문에 쓰인 실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64개국의 표본 중 28개국만 실제 데이터가 있었고 나머지 36개국은 질병환경이 비슷한 나라의 사례를 따다 썼다. 알부이 교수는 그중 6개 국가가 말리의 과거 식민지 명칭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 데이터가 있는 28개국도 정착민 사망률과 현재의 경제성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었다. 더 심각한 건 실제 데이터도 민간 정착민이 아닌, 군인에 관한 것이었다. 군인은 민간인보다 전투 중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 이는 수상자들이 가정한 근본 관계, 즉 정착민 사망률이 높은 나라가 더 나쁜 제도를 발전시켰다는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에드 글레이저 등 4명의 학자들은 2004년 ‘저널 오브 이코노믹 그로스’에서 수상자들의 결론이 제도의 효과인지, 인적자본의 효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호주 캐나다 같은 정착민 식민지에는 더 포용적인 제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원주민보다 훨씬 부유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정착민들도 많았다. 글레이저 교수 등은 논문에서 “자체 실험을 한 결과 인적자본이 제도보다 경제성장궤적을 더 잘 설명한다”고 주장했다.

1500년대 선두국가들이 오늘날 후발주자로 전락했다는 ‘운명의 역전’ 논문에 대해서도 신랄한 반론이 제기됐다. 루이지애나주립대 경제학 교수 아렌담 찬다 등 3명의 학자들은 2014년 7월 ‘아메리칸 이코노믹 저널’에서 1500년대 사람들이 살았던 지리적 위치뿐 아니라 실제 그 후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검증했다.

1500년부터 현재까지 엄청난 인구 이동이 있었다. 따라서 잉카제국과 오늘날 페루를 비교하는 건 두 나라의 사람들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찬다 교수 등은 “인구이동을 고려할 때 부의 역전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의 대물림이 지속됐다. 1500년에 번성했던 국가의 후손들은 21세기에도 잘살고 있다”며 “이러한 사실은 제도보다 인적자본이 중요한 요소라는 글레이저 교수의 주장에 대한 증거”라고 결론내렸다.

제도 후 발전 아닌, 발전 후 제도

한편 호주 학술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16일(현지시각) “수상자들 연구분석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제도가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소아스 런던대 경제학 교수인 무슈타크 칸은 2012년 논문에서 “포용적 제도를 채택했다는 나라들은 주로 오늘날 서구의 고소득국가들로, 서구에 기반을 둔 제도지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국가가 포용적 제도를 먼저 수립했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개발학 조교수 조스타인 하우게는 “실제로 역사에는 이러한 포용적 제도를 성장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고도 빠르게 성장한 국가들의 사례가 많다”며 “싱가포르와 한국 대만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좋은 예다. 최근에는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교수 훙위안위안은 2020년 저서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China’s Gilded Age)’에서 중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얼마나 만연했는지 분석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올해 노벨경제학상 발표 직후 ‘X(옛 트위터)’에 “수상자들의 이론은 중국의 경제성장뿐 아니라 서구의 경제성장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직격하며 “미국의 발전과정에서도 제도적 기관들이 부패로 얼룩졌다”고 지적했다.

가치판단 외면한 주류경제학

하우게 조교수는 “수상자들이 포용적 제도를 연구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이들은 서구제도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고 최악의 경우 제국주의·식민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식민지화 과정이 논문의 핵심방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수상자들이 식민주의의 대가를 더 광범위하게 논의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라며 “포용적인 제도가 발달한 정착민 식민지에서도 많은 경우 원주민 집단학살에 가까운 수년간의 폭력이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수상발표 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규범적 질문은 나와는 상관없다”며 “식민주의가 좋은지 나쁜지를 탐구하는 대신 우리는 다양한 식민지 전략이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다양한 제도적 패턴으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우게 조교수는 “주류경제학은 가치판단 없이 세상을 분석하는 데 익숙하다”며 “역대 수상자 명단을 보면 주로 미국 내 소수의 엘리트대학 경제학부에 소속된 경제학자들이 받는다”고 지적했다.

올해 6월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노벨경제학상 등 주요 상을 받은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10개가 채 안되는 미국 최고 대학 출신들이었다.

하우게 조교수는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식민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서구제도의 패권에 과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X가 Y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이들에게 상이 돌아간다”고 꼬집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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