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김여사 무혐의에도 남은 불씨

2024-10-18 13:00:24 게재

검찰, 불기소 이유 4시간 설명에도 의혹 해소 부족

야권 “권력 하수인” 검찰 비판 … 특검법 압박도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검찰이 2020년 4월 김 여사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고발장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지 4년 6개월만에 내린 결론이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4시간에 달하는 브리핑을 하며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지만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인데다 정치권에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이 17일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내세운 근거는 김 여사가 주가조작 사실을 인식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김 여사의 계좌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일당의 시세조종에 활용된 것은 맞지만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알았다고 볼만한 물증이 없고, 사건관계인들도 ‘김 여사는 몰랐을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어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이날 “김건희는 그냥 상장사 대표인 권오수의 말을 믿고 매수하려는 것 같았다”(1차 주포 이 모씨), “권오수가 뭘 부탁하면 김건희는 따지지 않고 들어주는 사이로 생각했다”(공범 민 모씨), “김건희는 주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주변 얘기나 소문 같은 것을 듣고 사달라고 하는 정도의 수준(A증권사 직원)” 등 관련자들의 진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권 전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전주 손 모씨가 공범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주식 거래에 가담했던 것과 달리 김 여사는 주식 전문성이 없는 일반 투자자로 평소 신뢰하던 권 전 회장에 의해 자신의 계좌가 범행에 이용됐을 뿐이라는 게 검찰 수사의 결론이다.

하지만 검찰의 상세한 설명에도 의혹이 말끔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주가조작 2차 주포인 김 모씨와 공범인 민 모씨는 2010년 11월 1일 ‘12시에 3300원에 8만개 때려달라 해주셈’, ‘준비시킬게요’, ‘매도하라 하셈’이라는 문자를 주고받았고, 이로부터 7초 만에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에서 이들이 말한 가격과 수량이 정확히 일치하는 매도 주문이 나왔다. 또 같은해 10월 28일에는 김씨와 민씨가 ‘잠만 계세요, 지금 처리하시고 전화 주실 듯’이라는 문자를 주고받은 지 3분 만에 이 계좌를 통해 10만주의 주식거래가 이뤄졌다. 거래 직후 김 여사와 증권사 직원이 나눈 통화 녹취록에는 “아 체결됐죠”라는 부분이 나온다. 1, 2심 재판부 모두 통정매매라고 판단한 거래로 김 여사가 시세조종에 개입됐다고 의심받는 정황들이다.

하지만 검찰은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받고 증권사 직원을 통해 주문을 제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김 여사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권 전 회장이 자신의 범행 내지 주가관리 사실을 숨기고 단순한 추천 ·권유를 통해 매도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이유에서다.

김 여사는 이와 관련 지난 7월 대면조사에서 자신이 직접 판단해 해당 거래를 실행했고, 주가조작 세력이 문자를 주고받은 시각과 겹치는 건 우연일 뿐이며, 따라서 통정매매도 아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의 진술은 법원 판단과 배치되지만 검찰은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없이 관련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한 ‘추정’으로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줬다.

2차 주포 김씨가 검찰 조사에서 김 여사를 ‘BP(블랙펄인베스트) 패밀리의 일원’이라고 진술하고 도피 중 공범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가장 우려한 김건희만 빼고 우리만 달리는 상황이 올 수 있고”라고 한 것도 김 여사가 주가조작 일당과 ‘한패’가 아닌지 의심하게 하는 정황이지만 검찰은 “BP패밀리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편지 문구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김 여사의 답변과 관련자들의 진술만으로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기에는 부족했지만 검찰은 강제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수사초기인 2020년 11월 김 여사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된 것이 전부다. 이후 수사팀이 바뀌었지만 추가로 영장을 청구하지는 않았다. 10년이 지난 사건이라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되면 수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당장 이날 지방법원·검찰청을 대상으로 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검찰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권오수 2심 판결문을 보면 김건희씨는 당장 구속해야 한다”며 “그런데 수사를 안 해서 공소제기가 안됐기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검찰의 결론을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며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권력의 하수인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 여사 무혐의 처분을 둘러싼 야권의 공세는 18일 서울중앙지검 등을 대상으로 한 국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경기남부경찰청은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씨를 불송치한 바 있다. 또 검찰은 지난해 3월 김 여사가 운영하는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가 부정한 협찬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고, 이달초에는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도 불기소 처분했다. 여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까지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지만 김 여사의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남아있다.

당장 야권의 특검 공세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17일 도이치 의혹 등 그동안 김 여사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 더해 최근 불거진 공천개입 의혹 등을 더한 ‘김 여사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특검법에는 검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도 담겼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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