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탐방 | 요트 같은 노르웨이 어선에 오르다 ②

고등어 하역 후 10분만에 자동포장…어민도 어획량 결정 참여

2024-10-18 13:00:35 게재

영국·러시아·EU와 국가별 쿼터 정하고 국내 어업인 조업가능량 배분

노르웨이정부 “수산업은 '다이내믹' … 어업인에 묻고, 도우려 노력”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에 있는 한자동맹박물관에 걸린 어업인 가족의 기도는 바다를 개척하며 살아온 노르웨이인들이 수산업 강국을 만들었다는 역사를 보여준다.

대구잡이로 유명한 북부 로포텐의 어부 가족 중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 멀리 남부 베르겐까지 가져와 파는 역할은 아버지와 장남의 몫이었다. 바다에 나가는 아버지와 장남은 남은 가족을 일일이 안으면서 신의 가호를 빌었고, 그들을 배웅하는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신에게 빌었다.

8월 하순 방문했던 노르웨이 베르겐과 올레순은 빙하가 녹으면서 시작된 노르웨이인들의 개척사와 수산업 강국의 모습이 연결돼 있고, 그 중심에는 노르웨이 어업인들이 있다.

거대한 어선에는 기계·전기전자·항공우주·생명과학 등이 집약된 고기잡이 설비가 있고, 선원들이 바다에서 고기잡고 쉬고 잠을 자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공간도 마련했다. 또, 어부들이 잡은 생선을 제값받고 팔 수 있게 운반하고 하역하는 시스템도 연결돼 있다.

어업인들은 한 해 잡을 수 있는 물고기양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여하고, 어업활동에 따르는 다양한 규제를 결정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어업인을 돕는 것이 자신들의 업무라고 강조했다. 선장과 항해사는 고기잡이를 하며 정부와 조업정보를 계속 주고 받았다.

◆어민들 잡은 고등어, 최고 품질 유지하며 하역 = 8월 21일(현지시간) 오후 올레순. 길이 74m의 3540톤급 규모 어선이 잡아온 고등어를 하역, 자동 세척·선별·포장하는 가공공장 올라브 이 피스케르스트란드(Olav E Fiskerstrand)는 시간당 55톤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100여년 역사를 가진 이곳은 초기엔 대구 중심으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수출용 어종인 고등어가 주력이다. 1년에 2만톤을 포장 운송한다.

피쉬펌프를 이용해 어창에서 가공공장 컨베이어로 바로 하역한 고등어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면서 크기별로 자동 선별 세척 포장된다. 작업자들은 컨테이어 옆에서 고등어 아닌 물고기가 나오면 걸러내고 몸체가 상한 고등어도 걸러낸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라온 고등어가 포장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이내다. 올레순(노르웨이) = 정연근 기자

하역에서 핵심은 고등어가 손상되지 않게 하고 신선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세일즈매니저 브리안은 “우리는 최고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배가 부두에 도착하자마자 펌핑을 시작한다”며 “배에서 물고기가 하역된 후 포장 및 밀봉돼 냉동 터널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대 10분”이라고 말했다.

가공공장은 배가 정박하는 항구의 안벽에서 10m 정도 거리에 있고, 물고기를 빨아들여 하역하는 ‘피쉬펌프’는 어선의 선창과 가공공장 컨베이어벨트를 연결해 고등어를 쏟아냈다.

고등어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면서 세척 선별 포장됐다. 과일을 크기별로 자동선별하듯 고등어도 크기별로 자동 분류됐고, 작업자들은 파손된 물고기와 가끔 섞여 나오는 다른 물고기를 제거했다. 필요한 경우 별도로 빼낸 물고기도 무게를 재고 다른 벨트로 옮겨 처리한다.

고등어는 컨베이너벨트 마지막 구간에서 상자로 포장한다. 모든 과정은 자동화돼 있다. 포장된 고등어는 대기 중인 지게차 등으로 냉동터널로 옮긴다. 영하 30도씨 온도를 유지하는 이곳은 하루 750톤을 냉동할 수 있다.

브리안은 “냉동터널은 저장용 창고가 아니다”며 “냉동되자 마자 바로 운송하는 경우도 있고, 조금 더 보관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많은 생산을 처리할 수 있도록 빨리 운송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냉동터널에는 8000개의 파레트를 쌓아둘 수 있다.

요트같은 어선에서 잡은 고등어를 피쉬펌프로 하역해 자동 세척·선별·포장하는 과정은 국내 고등어 하역 과정과 뚜렷하게 차이가 났다. 국내 최대 고등어 위판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의 경우 바다 위에서 20일 이상 낡고 좁은 선실에서 지내며 잡아온 고등어를 위판장 바닥에 하역해 손으로 분류하고 경매를 거쳐 운반한다.

하역작업 중인 어선 조타실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인근에도 다른 가공공장에 하역 중인 어선이 보인다. 산업시설이 들어와 있지만 풍경은 훼손되지 않았고 조화로웠다. 올레순 = 정연근 기자

배가 몇 시에 항구에 들어오든 하역은 오후 10시부터 시작되고, 하역을 마친 고등어는 위판장 시멘트 바닥 위에서 아침 경매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등어는 상온에 노출되고 신선도와 품질은 떨어진다. 경매를 마친 고등어는 얼음과 함께 포장돼 운송된다.

윤재웅 해양수산부 사무관은 “우리나라의 경우 양륙 위판 과정이 최소 수십분에서 최대 수시간 소요되며, 그 기간 중 어획물이 외부와 상온에 노출돼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일반적인 국내 위판장의 경우 취급하는 어종이 다양하고 상품에 따라 위판시간도 다르기 때문에 노르웨이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종이 단순하고 위판량이 많은 부산공동어시장 등 일부 위판장을 현대화할 때 노르웨이식 위판가공 모델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 어선·자원관리·소득 가능하게 한 ‘연중 순환관리 체계’운영 = 어선은 어부들의 작업장이지만 동시에 쉼터이고 잠자리다. 노르웨이 어선이 요트같은 공간으로 설계된 데는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있다. 어선을 허가하고 규제하는 기준이 무게(톤수)가 아니라 길이여서 어업인을 위한 공간을 배 안에 만드는 게 쉽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선에 계속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노르웨이는 어선이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을 정하고, 규제를 정할 때도 어업인들이 참여한다.

8월 23일 베르겐 항구에 위치한 수산청에서 만난 수산담당 공무원들은 “어업은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다이내믹한 일”이라며 “늘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언제나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수산청은 어업인들에게 늘 묻고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르웨이 통상산업수산부 산하 베르겐수산청 공무원이 노르웨이와 인근 국가들과 어업협정과 국가간 쿼터배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르겐 = 정연근 기자

베르겐 수산청은 노르웨이 통상산업수산부 산하 20개 수산청 중 최대 규모다. 전국 수산청 직원 420명 중 200명이 베르겐에서 일하고 있다. 베르겐은 북유럽 상공업도시 동맹인 한자동맹에 속했던 도시로 수산업과 무역이 발달했다.

노르웨이 어업도 1960년대와 80년대말~90년대초 두 차례 총 생산량이 급감한 위기가 있었다. 1차 위기는 청어, 2차 위기는 대구가 중심이었다. 남획이 원인으로 지목됐고, 대구잡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정치적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베르겐 수산청의 안드레아스 사무관은 “이후 대규모 감척사업을 통해 어업인과 어선을 줄이면서 어업인당 생산량이 늘어나고 소득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소득이 늘어나면서 정부의 보조금도 사라졌다. 1980년대 초반 34% 수준이었던 정부 보조금은 지난해 0% 수준으로 줄었다. 연간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을 정해서 규제하는 총허용어획량(TAC) 제도는 1980년대 처음 제안됐고, 2008년 이후 모든 어종에 적용하고 있다.

어선이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은 인근 국가들과 정하는 ‘국제쿼터’와 자국 어업인들에게 할당하는 ‘국내쿼터’가 있다.

노르웨이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국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인근 국가들과 어업분쟁이 잦았지만 지금은 협상을 통해 국가별 쿼터를 정한다. 러시아와는 접경 해역에서 북극해 대구 쿼터를 50대 50으로 정해 장기간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와 접경해역은 킹크랩 등 경제성 자원이 많아 중요한 해역이다.

남노르웨이 북쪽 해역은 고등어가 많다. 이곳 바다는 영국 페로제도(덴마크령) 유럽연합 등과 공유한 곳으로 청어 새우도 상호 공유한 자원이다. 서로 상대국 바다에 들어가서 조업할 수 있는 조약을 체결했고, 약속한 대로 조업하는지 위성을 통해 24시간 감시한다. 이 활동은 베르겐에서 총괄한다.

안드레아스는 “인근 국가들과 국제쿼터를 정하는데 연간 총허용어획량(TAC)을 정하는 게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라며 “북극해 대구 등 중요한 자원일 수록 쿼터를 정하고 규제하는 것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수산청의 활동은 ‘연중 순환 관리 체계’(Annual management cycle)로 짜여 있다. 수산청은 매년 11월 규제조정위원회를 열고 한 해 동안 현실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업인들과 토론한다. 안드레아스는 “45년 간 진행하고 있는데 초기에는 긴장감이 높았지만 지금은 많이 완화됐다”고 말했다.

쿼터가 정해지면 매년 1월 1일 공식 발표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공지한다. 법으로 정한 절차다.

하지만 한 번 정해진 쿼터가 1년 내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다. 안드레아스는 “쿼터가 정해져도 어업인들이 반발하면 수정도 한다”며 “수정과정은 1년 내내 진행된다”고 말했다.

규제조정위원회나 쿼터를 정하는 회의에 어업인 단체가 참여하지만 현장 어업인들 사이에 불만이 나오는 것은 대표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현실의 한계다.

누구나 회의에 참여할 수 있고, 회의를 미리 고지해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의 의견도 수렴하지만 현실에서는 큰 단체 중심으로 참여하게 되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 발언이 못 마땅할 수 있는 것이다.

안드레아스는 “현장 어업인들 중 회의 참석자가 왜 그런 말을 했냐며 항의하는 일들도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어선이 정박한 부두 안벽에서 가공공장은 10m 거리에 있어 피쉬펌프를 이용해 어창에서 가공공장 컨테이어벨트로 바로 하역할 수 있다. 배가 정박한 곳의 바닷물도 깨끗했고, 비린내도 없었다. 올레순(노르웨이) = 정연근 기자

한편 우리나라 해수부도 어업인의 소득을 높이면서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한 수산자원관리 전반을 개선하는 ‘지속가능한 연근해어업발전법’을 추진하고 있다. 어선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복지어선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수부와 한국수산자원공단에 따르면 현재 국내 어선은 톤수를 기준으로 한 선복량을 중심으로 규제하고 있다. 선복량은 사방이 막힌 공간을 합쳐서 구하는데 선복량이 클수록 어창의 크기와 선박 엔진출력도 커져 어획능력이 향상된다.

선원복지공간은 선복량에 포함돼 선원복지공간을 늘리면 어창이나 어구보관시설 면적이 줄어들게 된다. 이 때문에 국내 연근해 어선들은 선원들에 배정할 선실은 물론 변변한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도 많다.

윤 사무관은 “최근 제주에서 만난 한 선주는 요즘 선원들이 배 상태를 보고 골라탄다”며 “배에 샤워장이나 거주시설이 좋거나 새로 건조한 배라면 선원을 구하기 쉽지만 오래되고 비위생적인 배는 선원 구하기 어렵다며 최근 샤워장을 리모델링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베르겐·올레순(노르웨이) =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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