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치솟는 물가에 표심 변화…여야, 앞다퉈 지원책 내놔
자민, 각종 보조금 지원 및 최저임금 인상
민주, 물가목표치 낮추고 세액공제 확대
주말 총선거, 자민당 고전
일본 차기정권의 향방을 가르는 중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서민 생활안정을 위한 물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30년 가까이 사실상 물가변동이 미미했던 일본은 최근 3년 가까이 3% 안팎의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이번 선거에서 고전하는 이유도 정치적 부패 문제와 물가 급등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자민당과 제1야당인 입헙민주당 등은 물가대책의 일환으로 임금인상을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다. 임금인상 수준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임금 하락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여야 당대표 토론회에서 “기업의 내부 유보는 늘었지만, 실질임금은 줄고 비정규직도 늘었다”며 “중소기업이 확실히 임금을 올릴 수 있는 체제가 반드시 정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특히 최저임금 수준을 2029년까지 시간당 1500엔(약 1만4000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내년도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1040엔 수준으로 사상 처음 1000엔을 넘어섰지만 지역별로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도쿄(1200엔)와 오키나와(900엔)는 300엔 넘는 차이를 보인다.
입헌민주당도 최저임금 1500엔을 조기에 실현하겠다고 강조하지만 구체적 시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향후 5년간 1500엔으로 인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민주당 대표는 “이시바 총리가 말하는 2020년대 안에 1500엔 실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공세를 폈다. 자민당이 물가 급등에 따른 서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공약을 마구 던진다는 비판인 셈이다.
민주당은 임금인상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최저임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가격 전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기업이 상품가격에 임금상승분을 전가할 경우 물가가 다시 오르는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밖에 공산당을 비롯한 중소 야당도 최저임금을 전국적으로 일률화하는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산당은 또 시간외 및 휴일 근로의 상한을 강화하고, 시간외 할증임금을 인상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이 앞다퉈 최저임금 등 근로자 임금을 올리는 데 적극적인 데는 실질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서다.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8월 2.8% 수준을 보였다. 이에 따라 명목임금이 올라도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장기간 마이너스 수준에 머물러 있다. 후생노동성이 최근 발표한 8월 실질임금은 7월 깜짝 플러스에서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에 앞서 일본 실질임금은 올해 5월까지 2년 2개월 연속 뒷걸음했다.
일본 선거에서 경제정책 단골 소재인 소비세 인하에 대해서는 일부 중소 야당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레이와신센구미는 소비세 자체를 폐지하자는 입장이고, 일본유신회와 공산당은 각각 8%, 5% 수준으로 내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특별한 공약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자민당은 재정안정성을 위해서는 소비세 인하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인하를 주장했지만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인 노다 대표 당선이후 인하보다 세액공제 확대를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는 27일 투·개표가 이뤄지는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특히 아사히신문은 21일 자체 여론조사 등을 종합해 분석한 선거판세 결과, 자민-공명 연립여당의 과반의석 확보도 만만치 않다고 내다봤다. 아사히신문은 “연립여당은 과반수(233석)을 유지할 수 있을지 미묘한 정세”라며 “자민당은 기존 247석에서 50석 정도 줄어들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은 이에 반해 입헌민주당에 대해서는 “기존 98석에서 큰 폭의 의석수 증가가 예상된다”며 “국민민주당과 레이와신센구미도 의석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이시바 총리는 21일 최근 각 언론사 조사에서 자민당이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 “최대의 위기감을 갖고 남은 6일간 싸워 나갈 것”이라며 “연립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 일본은 어떻게 되겠느냐. 연립여당 만이 이 나라를 책임지고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