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용의 러시아 톺아보기
북한군 파병설과 북러 경제협력 독법(讀法)
북러 군사동맹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얼마 전까지는 북한의 포탄 등 무기 지원이 논란거리였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국이 북한군의 러-우 전쟁 참전 소식을 전하고, 국정원이 이를 ‘확인’하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북한군 파병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러시아는 ‘정보의 상충성’을 언급하며 파병설을 부인했고, 북러협력은 주권사항이니 상관하지 말라는 태도다. 신중론을 고수하던 미국 국방부와 나토가 뒤늦게 파병 증거를 확인했다고 발표한 것도 이상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선언문 채택과 맞물렸다. 더구나 파병‘목적’은 ‘모른다’고 고백했다.
국내 러시아 전문가들은 지금 단계에서 북한의 노동력 파견, 공병이나 군사기술단 파견이라면 몰라도 대규모 전투병력 참전은 ‘사실 확인 불가’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그렇다면 유독 한국에서만 북한 파병설이 쉽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군사협력 분야에서 북러가 밀착할 개연성이 크다고 다수가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9월 북러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광범위한 군사안보 협력의지를 과시했다. 마무리는 올 6월 푸틴의 평양 답방에서 ‘조러 포괄적 전략동반자조약’ 체결(6.19)로 완성됐다. 게다가 대다수는 이번 조약의 4조가 1961년 조소 우호조약 1조(즉각적인 군사 지원 규정)를 거의 그대로 부활시켰다고 보고 있다. 또한 조약의 23개 조항 중 전반부(1~8조)에 군사안보 관련 의제를 집중 배치한 점도 과거의 ‘군사동맹’ 조약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군사안보 측면만 보면 사실 왜곡 가능성
하지만 군사안보 측면에만 과민하게 집중하면 북러 밀착의 본질을 왜곡 해석하거나, 비군사안보 부문의 역동적 변화 가능성을 간과하게 된다. 첫째, 러시아가 북러 군사협력 강화로 나서게 된 궁극적인 이유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 획득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하는 ‘유라시아 안보시스템’에 북한을 전략적 동반자로 편입시키려는 데 있다.
둘째, 러시아에게 북러관계의 복원이 절실했던 것은 한미일 군사안보협력이 급속도로 진전되는 상황에서 역내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하고 대항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중러 연대 외에 또 다른 축인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관계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향후 격화될 ‘신냉전’의 장기 지속을 고려하고, 러시아 군수산업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북러 군산복합체 간 가치사슬의 재구축이 필요했다. 이것은 포괄적인 범위에서 북러 산업협력의 고도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조러 포괄적 전략동반자조약’(6.19)의 내용 후반부(9~20조)에는 약 11개 항에 걸쳐 경제통상, 투자, 과학기술, 정보통신, 식량 및 에너지 안보, 공급망, 농업, 교육, 보건, 관광 등 포괄적인 영역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국내 연구자는 이를 가리켜 북러관계와 그 미래의 틀을 짜는 일종의 ‘기본조약’이라 평가하기도 했다(이해영). 따라서 신조약 체결로 상징되는 최근 북러관계의 밀착을 과거 1961년 ‘군사동맹’ 조약의 복원으로 단순화하거나, 그 측면에서만 집중해서 보면 착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 북러 실질협력의 잠재력과 전망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첫째, 북한과 러시아는 전례없는 규모의 가혹한 국제제재를 받는 국가다. 따라서 통상과 투자의 관점에서 상호 협력을 확대해야 할 경제적 유인이 적다. 투자 활성화는 결국 러시아가 감당할 몫인데, 장기 전쟁 수행으로 재정 압박을 받는 러시아가 대규모 대북투자를 감행할 이유는 없다.
둘째, 북중러 삼각관계에서 러시아나 북한이나 공히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다. 장기간 경제위기를 겪는 북한의 경우에 교역에서 중국이 절대적인 비중(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대러 통상 증대는 부차적인 목표다. 러시아도 북한의 제2 교역국이지만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셋째, 북한과 러시아가 서로를 중대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더라도 북러 교역이 기본적으로는 러시아의 대북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2020년 기준 약 89%)하는 만성적인 불균형 상태다. 구조적 불균형 상태를 극복할 방안이 없기에 단기간 내 경제협력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가 가장 걸림돌
한편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긍정적인 변화 가능성을 예측하는 견해들도 있다. 북러 교역의 감소는 구소련 시기 전통적인 교역 패턴의 소멸과 가치사슬의 붕괴에서 기인한다. 과거 북한은 중화학 공업의 생산설비와 원부자재를 수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된 일부 제조업 공산품과 소비재를 수출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구소련 해체와 동시에 와해된 분업구조를 부분적으로 복원하면서 경제협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와 관련해 일차적으로 방산협력에 주목하게 된다. 폭과 정도에 대한 해석 차이는 있을지라도 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북러 군사협력이 북한경제의 성장을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2023년 국내총생산이 2020년 대비 40% 성장했다고 보고했는데, 이와 같은 파격적인 성장을 북러 군사협력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이영훈). 이 기간에 괄목할만한 성장이 금속 기계 부문 등 주로 군수공업 관련 산업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2023년을 금속 공업부문이 주체화, 현대화 실현에서 크게 약진한 해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북러 경제협력의 최대 걸림돌은 무엇일까.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라는 게 다수의 공통된 의견이다. 물론 러시아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안보리 국가들의 상황인식이 달라졌고 강대국간 전략 충돌이 격화됨에 따라 제재체제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드러내놓고’ 과거 자신이 찬성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러시아는 일단 ‘금지하지 않으면 허용’이라는 현재의 제재 원칙을 준수하겠지만 더 이상의 추가 제재는 용인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식량 또는 의료품 지원, 인도주의적 사안 등 비제재 대상이 일차적인 협력 분야일 것이라 예측한다. 북러 정상이 6.19 평양 정상회담에서 서명했다고 공개한 3건의 문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북러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이고, 다른 두개는 ‘북러 두만강 자동차 다리 건설’과 ‘북러 보건의료 의학교육 과학분야 협력’ 협정이다. 광범위한 협력이 논의되었겠지만 홍보에서는 다분히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절제된 기조를 유지했다. 러시아가 처한 ‘딜레마 상황’을 방증하는 것이다.
극동지역 교통물류가 최우선 협력 분야
북러 정상회담과 고위급 실무회담에서의 발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향후 실질협력은 농축산업 교통물류 에너지 관광 건설 등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러시아의 북한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육류제품 수출을 포함한 농축산물 교역 증대와 북한 노동력을 활용한 극동에서의 채소 재배, 축산, 육류 가공 등을 유망한 협력사업으로 전망한다. 러시아가 북한에 현대설비를 갖춘 의료센터를 건설하는 것도 유력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북한의 수력·열병합발전소 현대화 과제를 비롯해 북한이 태양광, 풍력 발전 및 소수력발전소 건설 시 러시아가 연료 자동화 시스템 기술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력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교통물류는 절박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최우선 협력 분야다. 러시아의 대북 관광객 증대를 위해서는 항공노선의 확대 외에도 접경지역 간 육로가 연계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 노동자의 대규모 파견과 잦은 송환 조치가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두만강 자동차 교량이 조기 건설되어야 한다. 이 교량의 완공은 기존의 철도 중심의 북러 교통물류체계가 도로·항만 등과 연계된 복합물류체계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 사업은 북중러 북방삼각의 접경지역 개발 및 지역통합을 촉진하는 물리적 기반이기도 하다.
러시아 극동으로의 북한 노동자 파견은 양국의 이해관계를 가장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과제다. 북한 노동력 활용은 나진-핫산 프로젝트의 재가동을 포함해 물류협력이나 극동 특구 소규모 제조업 협력, 북한 IT 인력을 활용한 혁신 협력, 연해주 남부의 메가시티 건설이나 수산 양식업 등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북러관계의 밀착을 군사협력에만 집중해서 보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북러 실질협력이 역량 부족과 제재 때문에 과거의 한계를 반복할 것이라 확신한다면 현실의 변화에 무감한 것이다. 세계질서의 대격변기에는 성급한 판단도 관성적 태도도 똑같이 위험하다. 잠재력과 한계를 균형된 시각에서 관찰하는 자세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