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가 에너지전환 앞당길 수 있을까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지만 ‘추출’ 어려워 … 생산방식 따라 7가지 색으로 구별
‘수소(Hydrogen)’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다.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수소는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 중에서 가장 가볍지만 대기 중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수소는 극히 적다. 대기 중 수소 비중은 0.00005%에 불과하다. 더욱이 수소는 가볍기 때문에 대부분 대기 상층부에 있고 지표면에는 0.00001% 극히 미량만 존재한다. 지구상 대부분의 수소는 H₂O(물) 상태로 존재한다.
16세기 연금술사 파라켈수스는 금속이 산에 녹을 때 기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수소’라고 처음 언급했다. 1776년 헨리 캐번디시는 그 기체를 연소시키면 물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783년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데 처음 성공했다. 그는 ‘물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원소’라는 뜻으로 이름을 ‘수소(水素)’라고 지었다.
전기처럼 만들어야 하는 2차 에너지
수소는 공기와 혼합한 후 불꽃을 튀겨주면 폭발적인 연소반응을 보인다. 가연성 물질이지만 연소할 때 약간의 물과 극소량의 질소산화물(NOx)만 배출한다. 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키면 전기와 열, 물이 발생한다. 연료를 태워 전기를 만들려면 보일러로 물을 끓여 고압의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야 하지만 수소연료전지는 화학적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로 변환하기 때문에 전환 효율이 훨씬 높다.
1969년 미 항공우주국(NASA)은 아폴로 11호 우주선에 수소연료전지 3대를 탑재했다. 수소연료전지는 우주선 1대당 최대 2300W의 전기를 생산했다. 수소는 모든 전자기기를 작동할 전기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나온 물은 우주비행사들의 생명수가 되었다. 수소연료전지는 인류의 달 착륙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수소에너지는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1차 에너지원이 아니라 전기처럼 만들어내야 하는 2차 에너지다. 현재 수소는 △정유나 제철 공정의 부생수소 포집 △천연가스(메탄·CH₄)에서 추출 △전기 에너지로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방법 등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생산된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녹색수소와 청색수소, 회색수소 등으로 나뉜다.
풍력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만든 수소는 ‘녹색(Green)수소’, 원전의 전기로 수전해를 한 수소는 ‘분홍(Pink)수소’, 일반 전력망 그리드(Grid)의 잉여전력을 이용해 수전해로 생산한 수소는 ‘황색(Yellow)수소’가 된다. 여기까지는 원료가 물(H₂O)이기 때문에 수소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다. 그러나 황색수소의 경우 전기를 생산하는 원료에 따라 수소 1㎏ 생산에 17.0 ~ 39.0㎏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그 다음부터는 SMR(Steam Methane Reforming) 방식으로 화석연료 속에 있는 수소를 고온으로 개질해서 추출한다. 천연가스를 개질해서 수소를 만들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면 ‘청색(Blue)수소’, 석탄 가스화 공정을 통해 생산한 수소는 ‘갈색(Brown)수소’, 탄소 포집 없이 천연가스를 그냥 개질해서 수소를 만들면 ‘회색(Grey)수소’가 된다.
뜨거운 수증기를 이용하는 SMR 방식에서는 수소와 함께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진다. 천연가스로 1㎏의 수소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10㎏, 석탄으로 1㎏의 수소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20㎏에 이른다.
최근 상용화된 ‘청록(Turquoise)수소’는 천연가스를 마이크로파 플라즈마를 이용해 개질하는 방식으로 생산한다. 이 방식은 이산화탄소를 카본블랙 형태로 고체화하기 때문에 따로 포집할 필요 없이 이를 타이어나 2차전지 음극재로 활용할 수 있다.
지하에 저장된 천연수소를 채굴하는 ‘백색/금색(White/Gold)수소’도 최근 주목받는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천연수소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전세계 수백개에 이른다. 사이언스 연구진은 천연수소가 세계 에너지 믹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 아니면 틈새시장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보고했다.
전기 생산량보다 투입량 더 많아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얻는 원리는 간단하다. 물(H₂O)은 수소원자(H) 2개와 산소원자(O) 1개로 구성돼 있다. 물에 전기에너지를 가하면 양(+)극에는 양이온을 띤 산소원자가, 음(-)극엔 음이온을 띤 수소원자가 달라붙는다. 음(-)극에 모인 원자만 모으면 고순도의 수소를 추출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게다가 에너지 투입량 대비 생산량이 더 낮다. 수소 1㎏으로 연료전지 발전을 하면 약 33.3㎾h의 전기가 발생하는데 수소 1㎏을 수전해로 생산하려면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상용화된 주요 수전해 기술은 고분자 전해질막 수전해(PEM), 알카라인 수전해(AEC), 고체산화물 수전해(SOECs) 등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앞서 상용화된 AEC 기술은 대용량화가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촉매 비용이 장점이다. 그러나 촉매가 잘 부식되는 문제가 있고 전해액을 계속 보충해줘야 한다. 수소와 산소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1㎏의 수소를 생산하는 데 약 51.8㎾h의 전력이 필요하다.
PEM 기술은 높은 에너지 효율로 장치의 소형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백금이나 티타늄 같은 고가의 촉매가 필요해 투자비용이 크다. 장치 가격을 낮추기 위한 추가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1㎏의 수소를 생산하는 데 약 54㎾h의 전력이 들어간다.
SOECs 기술은 고체산화물 전해질을 이용해 고온의 수증기를 전기분해하는 방식이다. 부식에 강하고 전해액 보충이 필요없어 유지보수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촉매도 귀금속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650~1000℃에 이르는 높은 작동온도가 필요하고 낮은 내구성이 문제다. 1㎏의 수소를 생산하는 데 약 42.3㎾h의 전력이 필요하다.
최근 독일에서 수행한 ‘에너지 믹스 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3가지 수전해 기술의 환경영향 비교’ 연구에 따르면 이런 수전해 방식 수소 생산은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녹색수소를 제외하면 기존 방식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수소 1㎏으로 자동차 100㎞ 이동을 가정하고 온실가스배출량을 산정한 결과, 녹색수소를 제외하면 기존 연료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소를 전기에너지 저장장치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업데이트한 넷제로 에너지 시나리오에서 ‘감축수단별 감축 기여도’를 명시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수소에너지 기여도를 2030년 3.2%에서 2050년 6.1%로 늘려야 한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을 이용한 그린수소 생산을 늘리는 것이 탄소중립을 위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수소는 제철 과정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줄일 대안으로도 주목받는다. 수소가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환원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철광석은 지구 무게의 1/5을 차지할 정도로 풍부하지만 산소와 결합해 녹이 슨 산화철(Fe₂O₃) 상태로 존재한다.
철광석은 ‘Fe 2개 + 산소분자 3개’다. 여기에 수소를 넣으면 물과 함께 철(Fe)이 생성된다.(Fe₂O₃ + 3H₂ → 2Fe + 3H₂O) 그린수소로 철을 생산하거나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쇠를 녹여 다시 철강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제로)’이 된다.
정유나 제철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는 수소도 있지만 그 양이 너무 적다. 우리나라 산업공정에서 나오는 부생수소는 자동차 연료로 쓸 경우 200만대 분량 정도인데 우리나라 등록 자동차대수는 이미 2500만대가 넘어 턱없이 부족하다.
수소를 내연기관 연료로 사용하는 연구들도 다수 진행되었으나 수소를 전기에너지로 이용하는 연료전지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대부분 중단되었다.
수소는 생산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전기에너지 저장용으로 사용하는 게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는 해가 뜨지 않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작동을 멈춘다. 수소를 전기에너지 저장장치로 쓰면 재생가능에너지의 이런 ‘간헐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