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살상무기’ 언급…민주 “정치 위기 벗어나려 전쟁 사주”
국방위서 러 파병 북한군 폭격→심리전 활용 메시지
민주당 “남북한 대리전 우려·신종 북풍몰이” 규탄대회
정부·여당 “북한이 가장 원하는 남남 갈등 조장” 반격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한 정부 대응을 놓고 여야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정부의 편향적 대외정책에 이은 ‘신종 북풍몰이’라며 비판하고 나섰고, 국민의힘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라”며 맞섰다. 대통령실은 야당의 규탄대회를 지목해 “남남갈등을 원하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행동”이라며 반격했다.
민주당은 2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윤석열정권의 전쟁조장, 신북풍몰이 규탄’ 대회를 열고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했다. 앞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에서도 정부여당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날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과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간 메시지를 언급하며 “한반도가 당장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왜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젊은 해병대원의 목숨도 지키지 못한 정부가 이역만리 전쟁을 한반도로 끌어오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어 “안보상황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잠재우기는커녕 가벼운 말로 위기를 부추기는 것을 사과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전쟁을 획책할 때가 아니라 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참관단을 파견하고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면서 “(참관단 파견 등이) 현실이 되면 심리전이 아니라 머나먼 이국땅에서 남북한이 대리전을 벌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는 “정권이 직면한 정치적 위기를 전쟁으로 무마할 속셈이냐”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기에 몰아넣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용납할 수 없다. 미숙하고 무모한 대응을 하려는 자를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신북풍’으로 규정한 최근 상황은 크게 두 가지다. 전날 한기호 의원과 신 국가안보실장과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이다.
한 언론이 포착한 한 의원 휴대전화의 텔레그램 대화 화면을 보면 한 의원이 “우크라이나와 협조가 된다면 북괴군 부대를 폭격, 미사일 타격을 가해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고 이 피해를 북한에 심리전으로 써먹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파병된 북한군을 공격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 실장은 “잘 챙기겠다”며 “오늘 긴급 대책회의를 했다”고 답했다.
한 의원은 “파병이 아니라 연락관 (파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추가적인 제안을 했고 신 실장은 “그렇게 될 겁니다”라고 답했다.
신 실장의 답변은 기존에 국방부가 밝힌 것보다 한발 나아가는 내용이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모니터링하는 요원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의에 “단계적 조치의 하나에 포함돼 있다”고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 지원 검토’ 발언도 기름을 부었다. 윤 대통령은 24일 한국을 국빈방문 중인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북 협력을 기해서 북한이 특수군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한다면 단계별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한반도 안보에 필요한 조치들을 검토하고 시행해나갈 것”이라며 “대원칙으로서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더 유연하게 북한군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살상무기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22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단계별 시나리오를 보면 방어용 무기 지원을 고려할 수 있고 한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마지막에 공격용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가장 수위 높은 발언이었다.
직접적인 발단은 한 의원과 신 실장간의 텔레그램 대화지만 민주당은 윤석열정부의 편향적인 대외정책이 원인이 됐다고 지목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북러 관계를 밀착 시키고, 한러 관계를 악화시키는 책임은 윤석열정부의 미숙하고 무모한 대응에 있다”면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찾아 윤 대통령이 ‘생즉사 사즉생’을 외치고 우리 정부가 포탄을 우회지원 했다는 의혹 등이 러시아와 북한을 급격하게 밀착하는 상황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을 폈다.
24일 국방위의 소란 이후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김건희 여사 이슈를 덮으려고 이제는 ‘전쟁사주’까지 하는 거냐”며 “대한민국 국민을 전쟁의 위협으로 몰고 가는 국민의힘과 윤석열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이같은 반발에 국민의힘은 ‘논리적 비약’이자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배경에 ‘윤석열정부의 외교 참사’가 있다는 민주당 주장에 “논리적 비약이자 편향된 시각”이라고 반박했다. 임 의원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해서도 “자유연대의 상징적 방문”이라며 “자유연대 세력과 함께해야 하고, 그쪽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사자인 한 의원은 “텔레그램은 개인 생각을 전달한 것이지 공식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는 한마디도 못하는 의원들이 국회의원 개인의 텔레그램 대화를 악마화하는 것이 가소롭다”고 맞받았다.
여당 국방위원들도 기자회견를 열고 “사적인 문자내용을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호도하며, 우리 국방위원을 공격하는 자세는 매우 부적절하다”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북한의) ‘영향 공작’(긍정적이고 우호적 생각을 갖도록 유도하는 심리 전술)에 휘둘리고 이용당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적과 아군을 분명히 구분하여 행동해 주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자중지란의 공세를 펴는 것을 즐길 대상은 김정은과 푸틴 밖에 더 있겠느냐”며 맞받아쳤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25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이 남남갈등 아니냐”며 “(야당의 규탄대회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행동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명환·김형선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