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와 전쟁 나선 축산업 ①
방취림 조성하고, 벽화 그리고…기피시설 인식부터 바꾼다
냄새 차단에 자연 친화적 이미지 구축 효과 커
전문기관 공동, 민원 다발지역 맞춤형 컨설팅도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 예산 지원 등 힘 보태
축산물은 인간에게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을 제공하며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인식돼 왔다. 사람들이 건강식으로 찾은 식품 대부분도 축산물이라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돼지·소·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은 2022년 이후 1인당 쌀 소비량을 추월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3대 육류 소비량은 60.6㎏으로 50㎏ 후반대인 쌀 소비량을 앞선다.
한국인들의 육류사랑에도 이를 생산·공급하는 축산시설에 대한 거부감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소득 증가에 따라 국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고 도심이 팽창했을 뿐 아니라 귀농·귀촌 인구까지 증가하면서 일부에선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접수된 축산시설 냄새 민원은 2020년 1만4345건, 2021년 1만3616건, 2022년 1만3656건 등 3년간 4만1617건이다. 특히 이 기간 전국 악취 민원 중 축산 관련 비중은 36.0%, 34.6%, 40.7%였다.
“고기는 좋아해도 축산은 싫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냄새 난다’ 선입견에 도전 = 이런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정부, 지방자치단체,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 그리고 축산 농가들의 환경개선 활동이 활발하다. 특히 축산시설은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눈길을 끈다.
축산농가 대부분은 냄새 제거 사료를 먹이거나 축사를 현대화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날씨와 바람, 주변 환경 영향에 의해 완벽하게 냄새 확산을 막는데는 한계가 있다.
축산업계 등에 따르면 냄새 확산을 막기 위한 기술적·제도적 개선 외에 방취림이나 조경수 등을 활용해 차단 효과를 극대화하고 갈등을 해소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방취림이 축사 밖으로 빠져 나온 냄새를 2차로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무가 삼림을 이루면 ‘탄소흡수원’이라 한다. 방취림은 피톤치드 등 향이 강한 수종으로 선정한다. 축산농가 주변 방취림 조성으로 삼림을 이루면 축산냄새를 가두고 필터효과를 내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향이 강한 수종으로 축산냄새를 희석시켜 외부 냄새 유출을 줄인다.
학계 등에서는 블루아이스 사철 측백 편백 이팝나무 황금사철 황금측백 등 냄새를 차단하는 데 효과적인 수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방취림은 냄새를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축사에 대한 선입견에 따른 이른바 ‘시각적 냄새’를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즉, 외부 경관을 개선하는 역할로도 활용한다.
특히 시각적 냄새는 귀농·귀촌인구 증가로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원주민에 비해 이주민들의 경우 축산냄새가 맡아보지 못한 것이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더러운 축사는 기피시설이란 선입견을 심어줘 결국 민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유치원생 견학지로 인기 = 올해 청정축산환경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태화한우농장은 사육기술 개발과 자연 친화적 축사로 축산업의 이미지를 개선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규천 태화한우농장 대표는 자체 개발한 배합사료를 이용해 단백질 과다로 우사에서 발생하는 가스와 분뇨 악취를 크게 줄였다.
이 대표가 처음 축산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에서 배합사료는 생소한 분야였다.
일본 축산농가 견학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이 대표는 각종 전문 서적을 뒤지고, 자격증을 취득해가며 배합사료 기술을 익혔다. 또 배합사료에 직접 배양한 발효균을 더해 영양도 극대화했다. 이 대표가 직접 개발한 배합사료는 특허 등록됐다.
소 한마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자동차 한 대와 맞먹는데 배합사료는 탄소 배출도 줄여 기후위기 해결에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
이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고약한 냄새가 나고 지저분하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축사 주변도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했다.
먼저 축사는 지면보다 낮게 설계해 분뇨 등으로 인한 침출수가 하천 등 주변으로 흘러나오지 않게 했다. 축사 앞에는 관상수 등을 활용해 정원을 가꾸고, 뒤로는 혹시 모를 악취가 주변 민가 등 마을로 퍼지지 않도록 방취림을 조성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금까지 냄새로 인한 민원은 한 건도 없었다.
이 대표는 “사료와 환경 개선만으로 냄새를 100% 막을 수는 없어 농장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면서 “나무가 축산냄새 확산 방지를 위한 완충지대와 자연 친화적 이미지 만드는데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가 어릴수록 냄새에 만감한데 우리 농장은 유치원생들의 견학장소로 인기가 있는 걸 보면 효과가 있는 것”이라며 “올해도 200주 가량의 나무를 새로 식재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방취림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밑거름 = 방취림을 통한 냄새 차단 효과를 확인한 정부, 지방자치단체, 축산경제 그리고 축산농가도 축사 주변 나무심기에 노력하고 있다.
축산경제의 방취림 지원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축산경제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축산농가 1964호에 22만여그루의 방취림 공급을 지원했다. 올해도 390호를 선정해 4만6322그루를 식재했다. 축산농가뿐 아니라 주변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인근 주민 중 80% 이상이 방취림 조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안병우 축산경제 대표이사는 “방취림 조성사업은 축산의 부정적인 인식 개선과 함께 참여농가의 만족도가 높다”며 “축산농가의 자발적 환경개선 노력이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축산경제는 한발 더 나아가 ‘예쁜 농장, 벽화 그리기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사업은 말 그대로 축산농장 외벽에 벽화를 그리는 사업이다. 혐오 시설로 분류되고 있는 농장 외벽에 그림을 그려 넣어 지역 주민들에게 축산과 농장에 대한 친숙함을 유도한다는 의도로 기획됐다.
매년 전국 축산농가 60~70호를 선정, 해당 사업을 실시한다. 벽화는 방취림처럼 경관 개선과 함께 ‘시각적 냄새’를 차단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민원 취약지역 공동 컨설팅 눈길 = 최근에는 여러 전문기관이 손을 잡고 축산냄새 취약지역의 민원을 줄이기 위해 맞춤형 공동 컨설팅에 나서기도 한다.
축산경제, 한국환경공단, 축산환경관리원, 지방자치단체 등이 함께하는 ‘축산 냄새 관리 솔루션 공동 컨설팅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업은 축산경제가 지역 축협과 함께 민원이 발생하지만 환경개선 의지가 있는 지역을 선정하면, 전문가들로 구성한 컨설팅단이 현장에 투입돼 맞춤형 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컨설팅단은 우선 현장을 방문해 악취측정·진단, 맞춤형 악취저감 방안 등 축산농장이 실천할 수 있는 맞춤형 단기·중장기 냄새 관리 솔루션을 제시한다.
올해는 세종시 부강면 일대 양돈농가 3곳과 양계농가 6곳이 대상 농가로 선정됐다. 컨설팅팀은 지난 8월 26~29일 복합냄새측정과 원인 분석 등의 1차 현장 컨설팅을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농가별로 냄새 저감방안을 제시하고 1~2개월의 자발적 이행 기간을 거쳐 효율 검증을 위한 2차 컨설팅도 진행한다.
앞서 2022년에는 진천축산농협이 선정돼 농가 10호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순천광양축협 관내 축산농가 13호(한우1, 낙농5, 양돈7)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특히 축산경제는 컨설팅을 통해 해당 지역과 농림축산부 축산악취개선사업 등 정부 지원 사업이나 농협 축산환경개선 지원을 연계해 나가고 있다.
안 대표는 “앞으로도 축산농가의 자발적인 환경 개선을 유도·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깨끗한 축산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장세풍·박광철·이재걸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