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하나 사이로 글로벌 빈부차, 왜?

2024-10-28 13:00:01 게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포용적 제도가 원인” … 모범사례로 든 한국 현주소는 ‘글쎄’

미국과 멕시코 간 경계에 노갈레스라는 도시가 있다. 노갈레스는 담장으로 도시가 갈려 있다. 담장 북쪽은 미국 애리조나주, 남쪽은 멕시코 소노라주에 속한다. 북쪽과 남쪽 노갈레스 주민은 조상도 같고, 즐겨 먹는 음식과 즐겨 듣는 음악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미국땅에 사느냐, 멕시코땅에 사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은 천양지차다. 미국 노갈레스의 연평균 가계수입은 3만달러 가량이다. 멕시코 노갈레스의 경우 그 1/3 수준에 불과하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A. 로빈슨교수.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캡쳐

“본디 한몸이나 다름없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찌 이토록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메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가 2012년 함께 내놓은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도입부에서 던진 질문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4일(현지시간)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아제모을루 교수와 로빈슨 교수, 사이먼 존슨 MIT 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아제모을루와 로빈슨, 존슨 교수 등 경제학자 3명은 사회제도와 경제성장 간의 연관성을 규명한 공로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노벨경제학상 선정 이유로 “국가 간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이 우리 시대 중요한 과제이며, 수상자들은 이를 위해서 포용적 사회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했다”라고 밝혔다. 포용적 사회제도가 경제번영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입증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아제모을루와 로빈슨 교수의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두 노갈레스가 이처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 노갈레스와 멕시코 노갈레스 주민들은) 사뭇 다른 제도가 지배하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도가 다르다 보니 두 노갈레스 주민뿐 아니라 두 곳에 투자하려는 사업가나 기업마저 대단히 다른 인센티브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양쪽의 제도와 소속 국가가 달라 생겨나는 사뭇 다른 인센티브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도시가 경제적으로 다른 발전상을 보여주는 주요 원인이다.’

책은 남한과 북한도 비교한다. 밤에 찍은 한반도 위성사진을 통해 대낮처럼 휘황찬란한 남한과 칠흑같이 어두운 북한을 대비시킨다. 책은 “겨우 반세기 만에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두 나라의 소득격차는 10배까지 벌어졌다”고 썼다.

무엇이 남북한의 운명을 갈랐을까? 책은 “남한에서는 경제적 삶을 지배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규칙인 경제제도가 국민의 저축과 투자, 혁신을 보장해 준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지속된 것은 1980년대에 경제성공을 보장하는 포용적 정치제도로 이행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짚었다.

인공지능 물결도 선택적으로 수용

아제모을루와 존슨 교수의 2023년 공저 ‘권력과 진보’는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제도 간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책은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인공지능(AI) 물결을 무기력하게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과학기술을 필연적인 경로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사회집단의 판단을 통해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테크놀로지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가리킨다. 바로 선택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우리의 집합적인 지식을 사용하는 방법은 아주 많으며 혁신의 방향을 잡는 방법은 그보다도 더 많을 것이다. 디지털 도구를 감시에 사용할 것인가? 자동화에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업무를 창출함으로써 노동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미래의 진보를 어느 방향으로 이끄는 데 우리의 노력을 쏟을 것인가?’

책은 “인류가 성취한 기념비적인 기술 진보에 너무 속지 말아야 한다”면서 “공유된 비전은 우리를 덫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산성을 높여 노동 수요를 늘리고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산성을 아주 많이 높일 때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인류 역사는 기술 혁신과 변화의 과정이다. 그 주도권은 늘 권력자들의 손에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대 기업들이 그 권력을 행사한다. 책은 “이제 거대 기업들이 심지어 더 큰 시장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권력이 경쟁자의 혁신을 저해하고 자신의 경영자와 주주를 살찌우는 데 사용된다” 우려한다.

몽유병자처럼 경제폭풍 속으로

노벨경제학상 발표가 있은 지 사흘 뒤인 17일 아제모을루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몽유병 환자처럼 경제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America Is Sleepwalking Into an Economic Storm)’는 칼럼을 기고했다

아제모을루는 미국에 접근하고 있는 폭풍으로 △인구 고령화 △AI의 부상 △세계 경제의 재편 등 3대 변화요소를 꼽았다. 그는 “현재 상황을 잘못 관리하면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향후 5~10년 동안의 선택에 따라 우리가 어떤 길을 걸을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제모을루의 지적대로 미국의 노동력은 가파르게 고령화하고 있다. 미국인 100명당 65세 이상 미국인이 2000년에는 27명이었지만, 2020년에는 39명으로 늘었다. 2040년에는 54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아제모을루는 “지난 30년 동안 일본과 독일, 한국은 현재 미국의 고령화보다 거의 2배나 빠르게 고령화됐다”면서 “좋은 소식은 이들 나라의 경제성장 속도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느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동차와 기계, 화학 등 노동력에 의존하는 여러 부문들이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제모을루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그들은 젊은 노동자들의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 설비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자동화에 따른 새로운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신기술) 교육에도 투자했다.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경우 한편으로 산업용 로봇을 (생산라인에) 도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수리와 품질 관리, 디지털 기계 작동 등 새로운 기술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 결과 생산성이 급증하고 임금도 계속 오르고 있다.’

아제모을루는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개탄했다. 로봇에 대한 투자는 빠르게 증가했지만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투자가 수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제모을루는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가 올해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첫 반도체 신공장을 가동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내 숙련 근로자 부족으로 가동을 내년으로 연기한 점을 그 사례로 들었다.

아제모을루는 미국이 신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그를 다룰 수 있는 숙련 노동자를 찾지 못한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체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제모을루는 특히 AI에 대한 대비를 강조했다. 그는 AI에 의한 자동화와 노동 대체가 진행될수록 노동자를 위한 광범위한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과 노동자가 함께 결합할 때 생산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면서 “노동자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더 나은 업무를 수행하고 정교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제모을루는 NYT에서 한국의 고령화 및 AI 대책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그러나 그런 칭찬은 이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다. 오늘의 한국은 어떨까? 국정기조를 바꾸라는 국회의원과 연구개발(R&D) 예산 복원을 요구하는 카이스트 졸업생을 ‘입틀막’으로 끌어내고,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을 줄줄이 검찰 압수수색으로 억누르고,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을 24차례나 대통령 거부권으로 무력화하는 나라를 보고 아제모을루와 로빈슨과 존슨 교수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2일 부산 범어사를 찾았을 때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나라와 국민의 발전을 위해 권하는 ‘포용적 사회제도’와는 거리가 먼 행보다. 이러다가 한국이 몽유병 환자처럼 거센 경제・사회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아닐까?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