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핵심은 주민자치…주민자치회 확대해야
국회 주민자치회 관련법 놓고 논쟁
서울 종로구민 새 주민자치회 실험
10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내년이면 전국 4대 동시지방선거(기초·광역지자체장 및 의원)가 시작된 지 만 30주년을 맞게 된다. 그동안 중앙정부의 예산·권한을 지자체·의회 등 지방에 넘겨주는 것을 지방자치 발전의 주된 척도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치의 참 주체인 주민의 책임성과 결정권이 얼마나 보장되느냐가 척도가 돼야 한다. 그래야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지방자치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내일신문은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지방자치의 근본인 ‘주민자치’를 바로세우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두번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편집자주>
“주민자치가 지방자치 근본이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진정한 지방자치는 주민 스스로 지역을 다스리는 것이며 개정안은 이를 위한 주민 참여, 주도권 보장에 중점을 뒀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정작 2019년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선 주민자치의 핵심인 ‘주민자치회’ 관련조항이 빠졌고 ‘주민자치회 법제화’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민자치회 시범운영만 11년째 = 주민자치회는 지난 2013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시범적으로 설치·운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특별법은 주민자치회를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 단위로 설치할 수 있는 주민자치기구’로 규정하고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없어 11년째 시범 운영만 하고 있다.
‘주민자치회’에 앞서 주민자치센터별로 운영해온 ‘주민자치위원회’와 관계설정도 문제다. ‘주민자치위원회’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읍·면·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전환하면서 만들어졌다. 주민자치 및 문화·복지 편의기능을 수행하고 주민자치센터의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구성·운영된 조직이다.
그러나 대부분 주민자치위원회가 문화·여가·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고 행정동의 하부기관화 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2013년부터 ‘주민자치회’가 시범운영됐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읍·면·동 3530곳 가운데 1531곳(43.3%)으로 확대된 상태다.
◆“관객, 소비자로 전락한 주민” = 하지만 현재의 주민자치회나 주민자치위원회 모두 실질적인 ‘주민자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주민자치회의 위원은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기초단체장이 위촉하고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원은 읍·면·동장이 위촉하기 때문이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제대로 된 자치는 주민이 지역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하고 책임져야 하는데 지금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와는 거리 멀다”며 “주민이 관객, 소비자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제22대 국회에선 주민자치회 관련 일부 진일보한 법안들이 발의됐다. 박 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같은당 이해식 의원은 주민자치회 설치·운영 근거를 담은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이해식 의원은 주민자치회 구성·운영 주체를 단체장이 아닌 ‘주민’으로 하고 자치회 위원과 대표도 주민자치회원들이 정하도록 했다. 박 의원 법안은 주민자치위원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자치위원회를 두되 위원을 공개추첨토록 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 역시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읍·면·동장에게 위원 추천권을 부여하거나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들을 법률로 정하는 등 기존에 발의된 법안들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두 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주민자치회 설립권리를 주민에게 부여한 점 등은 성과이나 주민 스스로 주민자치회를 설립·운영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법·권리·의무로 부여하지 못하고 기존 법안들의 오류를 답습하는데 그쳤다”며 “주민자치를 관료에 예속시키고 정치에 복속시키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주민 손으로 만든 ‘통 주민자치회’ 조례 = 지방자치 전문가들은 현 읍·면·동 주민자치회의 핵심문제로 ‘인구’를 꼽는다. 인구가 많고 행정기관인 읍·면·동과 겹쳐 주민자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읍·면·동은 전국에 3614곳이 있으며 평균 인구가 1만4180명(2024년 9월 30일 기준)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경기 남양주시 다산1동으로 10만5177명에 달한다.
때문에 통·리 규모로 주민자치회를 설치해 주민자치를 실질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은 “한국의 읍·면·동은 외국의 기초지방정부에 가까운 큰 규모라 명예직 주민자치회가 감당하기 어렵고 생활관계가 형성될 수도 없다”며 “주민자치회를 통·리 계층에 설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하고 주민자치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남 영암군 금정면에서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던 의원을 주민들의 힘으로 살려낸 사례는 주민자치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금정면(인구 1991명) 주민들은 마을공동재산인 태양광발전기금 5000만원을 병원 리모델링에 투입했고 청년들은 공사에 참여했다. 연봉 5억원을 제시해도 오지 않는 의사 역시 주민들이 고향(영암) 출신의사를 물색, 삼고초려 끝에 채용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 종로구 주민들이 새로운 주민자치회 실험에 나서 주목된다. ‘종로구 주민자치조례 주민발안 추진위원회(추진위)’는 ‘통’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서울시 종로구 시범실시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3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3월 구의회에 제출했다.
구의회는 최근 적정요건을 충족해 이를 수리하고 상임위원회로 넘겼다. 주민발안조례 추진위는 11월 1일 기자회견을 갖고 의원 및 주민 대상 조례안 설명회 등 공론화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손중호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조례안의 핵심은 기존 동 주민자치위원회, 통장 제도를 유지하면서 ‘통’에 주민자치회를 추가 설치하는 것”이라며 “종로에 사는 세대주, 사업자등록자 모두가 회원이 되는 ‘통 주민자치회’를 설치해 진정한 주민자치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