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자치실험 주목해야”
인터뷰 |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
주민자치 ‘지방소멸’ 해법
“읍·면·동은 동장 선거도 하지 않고 의회도 없습니다. 통·리도 마찬가지죠. 읍·면·동과 통·리는 민주주의 사각지대인 셈입니다. 주민자치는 읍·면·동을 민주화하는 것입니다.”
전상직(사진) 한국주민자치중앙회 회장은 “읍·면·동을 민주화하는 주민자치가 필생의 과업”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의 읍·면·동 주민자치는 인구 규모나 면적 범위에서 불가능하다”며 “주민자치 기능을 통·리에 두고 협치기능을 읍·면·동에 두는 이중 구조로 주민자치를 실질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민자치회 구조로 설계된 것이 서울 종로구 주민들이 발안한 ‘주민자치회 시범 설치·운영 조례’다.
한국주민자치학회장을 겸하고 있는 전 회장은 “지난해 9월부터 종로구 주민자치 실질화 연구를 시작해 주민들과 함께 주민발안 조례안을 완성했다”며 종로구민들의 새로운 주민자치회 실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택가는 통별로, 아파트는 라인별로 주민자치회를 조직하고 상가 관리대표, 이미용협회 등 단체들도 지역문제 해결의 주체로 참여한다”며 “사각지대였던 ‘통·리’에서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진짜 자치를 한번 해보자는 것인데 성공하면 경천동지할 놀라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전 회장은 “조선시대의 ‘향회’에서도 ‘주민자치’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조선 향약 가운데 수령(관료행정) 중심의 주현향약, 양반 주도의 동약 등 양민지배를 목적으로 했던 향약들은 모두 실패했지만 상민과 주민들끼리 수평적으로 운영했던 촌계는 크게 성공했다”며 “이 촌계가 바로 우리나라 주민자치의 원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작과 함께 향회는 폐지되고 조선총독부가 도-군-면-리까지 수직적인 통치체계를 완성하면서 주민자치는 단절됐다. 지금의 읍·면·동과 통·리는 일제강점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전 회장의 설명이다.
전 회장은 “조선시대 촌계처럼 주민자치는 정치도 행정도 개입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자치회는 탈정치 탈행정 탈시장 탈개인 조직으로 출발해야 하고 충분한 경험이 쌓이면 국가나 시장,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주민자치가 해낼 수 있게 된다”며 “선진국일수록 이 영역이 매우 넓고 그 크기와 넓이에 따라 선진국의 위치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주민자치가 ‘지방소멸’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제가 태어난 마을(면)에 기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데 주민자치회가 출향민에게도 회원 권한을 줄 수 있고 그러면 합법적으로 고향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며 “기존 제도로 담지 못하는 풍부한 내용을 주민자치로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