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미국·유럽 수소기업 주가 붕괴
낮은 수요, 규제 불확실성 등 이유
미국과 유럽의 청정수소기업 주가가 붕괴했다. 업계가 예상보다 낮은 수요, 규제 불확실성, 커지는 투자자 회의감 등에 고전하면서 수소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
2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플러그파워, 캐나다 발라드파워시스템즈, 덴마크 그린하이드로전시스템즈 등의 주가는 올해 들어 50% 넘게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분기실적에서 손실을 거듭하면서다. 노르웨이 넬, 미국 블룸에너지, 영국 ITM파워 등의 주가는 1/3 하락했다.
저탄소 수소생산 기업들을 추종하는 ‘S&P켄쇼글로벌수소경제지수’는 2020년 중반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2020년 말~2021년 초 녹색에너지 개발에 따른 기대감에 급등했지만 올해 들어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수소는 철강과 해운 등 에너지집약산업계를 탈탄소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청정수소는 재생에너지를 통해 녹색수소로 생산하거나 천연가스를 통해 청색수소로 만들어 그 과정에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저장할 수 있다.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지난달 2030년 녹색수소 전망을 대폭 낮췄다. 바이든정부는 2030년까지 1000만톤의 청정수소를 생산하겠다고 자신했지만 맥킨지는 70% 달성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회계감사원 역시 올해 7월 2030년까지 녹색수소 1000만톤을 생산한다는 유럽연합(EU)의 계획을 ‘실현불가능(unrealistic)’하다며 재검토를 요구한 바 있다.
영국 자산운용사 슈로더의 테마형주식 대표 마크 레이시는 “녹색수소는 여전히 투자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년 전만 해도 수소시장은 잔뜩 들떴다. 바이든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수소생산기업들에 큰폭의 세액공제를 약속하면서다. 동시에 EU 역시 야심찬 수소생산전략을 내놓았다.
수소시장이 침체한 반면 원자력기업들 주가는 역대 최고치로 치솟고 있다. 인공지능(AI)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수요가 급등하면서다.
미국 세액공제 규정의 불확실성, EU의 엄격한 규제정책이 미미한 수요와 결합하면서 미국과 유럽 수소프로젝트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차·도요타·BMW 등 주요 완성차 업체와 셸·토털 등 에너지기업 13개 업체로 구성된 협의체 ‘수소위원회’와 맥킨지에 따르면 북미의 경우 2030년까지 완공하겠다고 발표된 수소프로젝트의 약 18%, 유럽의 경우 5%만 최종투자결정(FID) 단계를 넘어섰다.
미국 수소장비제조사 플러그파워의 CEO 앤디 마쉬는 “힘겨운 여정”이라고 말했다. 뉴욕에 계획한 2억9000만달러의 북미 최대 규모 프로젝트를 멈춰세웠다. 자금경색에 직면하면서다. 그는 “수소경제가 얼마나 빨리 도래할지에 대해 비현실적인 예측을 했다”고 인정했다.
지난달엔 미국 수소벤처기업 하이스토가 네덜란드 넬과 합작해 미시시피주에 1기가와트(GW) 규모 수소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폐기했다. 미국 매러썬 페트롤리엄과 CNX리소스, 호주 포테스큐 등 화석연료기업들도 청색수소를 생산하겠다며 바이든정부의 70억달러 수소허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일제히 발을 빼는 상황이다.
넥은 지난해 4억달러를 들여 미시간주에 수소장비 제조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여지껏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 기업은 “예상보다 많은 비용, 세액공제 규정의 불확실성 등 모멘텀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바이든정부 세액공제 기준 확정이 늦어지는 데다 수소 수요마저 지지부진하면서, 사업다각화가 안된 소규모 기업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반면 커민스와 에어리퀴드, 린데 등 다각화한 중대형 기업들의 주가는 올해 들어 상승했다. 전력수요 예상치가 상승하면서다.
유럽의 경우 불충분한 정부 보조금, 일부 국가의 규제장벽 등으로 수소관련 기업들이 좌절하고 있다. 특히 녹색수소에 대한 정의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업계의 불만이 팽배하다. 스페인 에너지기업 렙솔은 지난주 에너지기업들에 횡재세를 확대한다는 정부 방침을 비판하며 모든 녹색수소 프로젝트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영국 셸은 “청색수소 시장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며 노르웨이에서 계획한 청색수소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하지만 전세계 차원에서 보면 수소프로젝트를 아예 취소한 경우는 많지 않다. 업계는 유럽과 미국이 인센티브와 규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해소해 준다면 수소시장의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놓지 않고 있다. 에너지컨설팅기업 우드 맥켄지에 따르면 지난 18개월 동안 전세계 기존 또는 계획된 저탄소 수소용량의 약 2%가 보류되거나 취소됐다.
세금정책을 담당하는 미국 재무부 차관보 아비바 애런-다인은 이달 초 “수소 보조금 최종 규정은 올해 말 확정 공개된다”고 밝혔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