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의회 “UNRWA 활동 금지”
‘유엔 구호활동 막고 외교도 단절’ 법안 통과 … “가자지구 원조 무너질 것” 우려
AP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동예루살렘에서 UNRWA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찬성 92표, 반대 10표의 압도적 차이로 통과시켰다. 아울러 UNRWA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별도 법안도 87대 9로 표결 처리했다. UNRWA가 이스라엘 내에서 수행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활동”이 금지되고,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도 끊어지는 것이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UNRWA 직원 수천명이 연루된 점과 일부 직원이 하마스나 다른 무장단체에 가입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UNRWA의 집행위원장인 필리페 라자리니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번 투표가 국제법에 따른 이스라엘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안은 UNRWA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역할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지속적인 캠페인의 최신 사례”라며 “특히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강조했다.
NYT는 “당장은 해당 법안이 어디까지 적용될지, 언제 시행될지 명확하지 않지만 UNRWA의 일부 기능을 위협하리라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고 했다.
첫 번째 법안은 포위된 기자지구와 점령된 서안지구에서 UNRWA의 활동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법안은 이스라엘과 UNRWA 사이의 외교적 접촉을 차단하고 있어, 인도적 지원을 가자지구로 이동시키는 일상적인 메커니즘과 유엔 난민기구 관계자의 외교적 지위를 방해할 것이라고 FT는 분석했다.
AP통신은 이 법안들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원조를 늘리라는 미국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가자지구의 취약한 원조 분배 프로세스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이번 법안이 최소 3개월 동안은 시행되지 않지만, 동예루살렘과 서안 지구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짚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30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동예루살렘을 합병해 도시 전체를 자국의 주권영토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의회의 이날 입법 조치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공습을 실시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또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수장들이 가자지구 휴전과 하마스 인질 석방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카타르에서 예비회담을 가진지 하루 만에 이뤄진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운 유럽 동맹국들과 일본, 한국 등이 하루 전 UNRWA의 이스라엘 내 활동을 금지하면 “이미 심각하고 빠르게 악화되는 인도주의적 상황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을 무시한 행위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호주 등 7개국 외교장관들은 공동성명을 내 “UNRWA의 인도주의적 활동에 어떠한 방해가 있어서도 안 된다”며 “이스라엘 정부에 UNRWA의 활동을 보장하는 국제법상 의무의 준수를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의 최대 외교적, 군사적 후원국이자 UNRWA 예산의 최대 공여국인 미국도 법안 통과 전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UNRWA가 사라지면 아기와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이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물, 의약품에 접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