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송·변전설비 구축사업 한전에 떠넘겨
‘주변지역 지원사업’ 예산 편성 안해
부채 120조원 한전이 전담하긴 무리
전력수급 차질 및 전기요금 인상 요인
국회예정처 “전력기금 활용 검토해야”
전력수요 증가에 따른 전력망 확충 필요성이 시급히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송·변전설비 확충사업을 한국전력공사에 전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예산안에 송전선로 및 변전소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을 위한 비용이 반영되지 않은데다 전력산업기반기금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한전이 자체 재원을 활용해 추진하고 있지만 재무구조 악화로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전력의 안정적인 수급 차질은 물론 전기요금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9일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2025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예산안 분석’(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을 위한 소요재원은 1501억원으로 추산된다. 이후 매년 증가해 2029년 1859억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을 살펴보면 송전선로는 2021년 3만5190C-km에서 2036년 5만7681C-km로, 같은기간 변전소는 892개에서 1228개까지 확충할 예정이다. 각각 1.64배, 1.38대 증가한 규모다.
그만큼 원활한 설비 확충을 위해 주변지역 보상 재원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하지만 한전의 재무 구조 악화로 보상이 지연될 경우 송·변전소가 적기 확충되지 않아 에너지 수요 기업의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전기요금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전은 2023년말 기준 부채가 120조1812억원에 이르며, 자본대비 부채비율은 644.2%로 재무구조가 악화돼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후 국제에너지가격은 급등했는데 국내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한 것이 주요인이다.
현재 구조라면 한전이 지원업무를 온전히 수행함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사업추진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는 송·배전설비의 원활한 확충 필요성,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전력기반기금을 활용해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사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전기사업법’ 제29조는 발전소 주변지역 또는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사업을 전력기금 용도로 규정하고 있다.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0조에서도 사업자 재원만으로 사업의 안전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경우 전력기금으로 비용 일부를 부담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전력기금의 기금운용계획에는 발전소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사업만 편성돼 있고,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을 위한 예산은 전무하다. 형평성 논란과 함께 한전이 지원 업무를 온전히 수행하기에는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관련법의 전력기반기금 사용 규정, 한전 재무여건의 단기간 개선이 어려운 점, 주변지역에 제때 지원·보상이 안될 경우 송·변전설비 확충 지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사업 소요 재원을 전력기금 계획안에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사업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해당지역 주민에게 한정되긴 하지만 이는 원활한 송배전망 확충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전력수요에 부응하는 공익적인 인프라 구축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전이 추진하는 전력망 건설사업은 전국 곳곳에서 주민 보상 협의 등의 문제로 장기간 지연된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345kV 북당진~신탕정(태안TP) 송전선로는 당초 2012년 6월 준공예정이었으나 공사기간이 150개월 지연되고 있다.
345kV 당진화력~신송산(당진 TP) 송전선로는 2021년 6월 준공목표에서 2028년 12월로 90개월 밀렸고, 500kV 동해안~신가평 HVDC(신한울NP)도 2019년 12월에서 2025년 6월로 준공시점을 66개월 늦췄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