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지금 참고 기다리는 이는 누구인가
임기 반환점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이 뭔가 변화를 꾀하리라는 희망 섞인 보도가 줄을 잇는다. 여당 국민의힘이 참패한 4.10총선 이후에도 비슷한 보도가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취임 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자 정치권과 언론 모두 첫 걸음마 뗀 아기를 보듬듯 힘껏 칭찬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6개월, 바뀐 것은 없었다.
대통령실에선 정국을 해법으로 정권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부상한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자체 해법을 강구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매번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했던 전력에 비추어 보면 큰 기대를 갖기 어렵다.
지금 흘러나오는 것처럼 제2부속실 설치 정도에 머문다면 실망을 넘어 분노가 터져나올 것이다. 대통령실이 제2부속실 설치 검토를 처음 밝힌 것은 김 여사 특검법을 거부한 지난 1월이다. 2월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KBS대담에서 “국민 대다수가 원하면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제2부속실을 마치 대단한 카드인 양 내놓지는 말기를.
29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보면 곧 임기 후반기를 맞이하는 윤 대통령의 조바심이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4대 개혁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연내’ ‘속도(감)’ ‘박차’ ‘체감’ 등의 표현을 10번이나 썼다. 바닥권인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낮은 지지율은 대통령이 말하는 개혁성과와 별개라는 점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부정평가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 것은 김 여사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지지율 반등도 없다는 뜻이다.
4대 개혁 말고 최근 대통령 발언 중 많이 회자되는 발언은 단연 범어사 메시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썰렁한 만남 다음날 범어사를 찾은 대통령은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다. 파장은 대단했다. 오죽하면 친윤계 김재원 최고위원도 “지금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업보가 아니라 적극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했을까.
‘돌’ 발언도 곱씹을수록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애덤 셰보르스키는 투표용지를 ‘종이로 만든 돌멩이(paper stones)’라고 했다. 이 비유를 적용하면 지난 총선 때 투표에 참여한 2965만4450명의 유권자들이 종이돌을 던졌다. 이 돌멩이들은 벌써 반년간 대통령 곁에 돌탑으로 쌓여 있다. 대통령이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이날 범어사 주지스님은 대통령에게 ‘감인대(堪忍待,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라고 쓰인 액자를 건넸다고 한다. 지금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쪽은 누구인가. 대통령인가, 국민인가.
김형선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