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돌 맞겠다”며 국회 시정연설엔 불참
지지율 바닥·여권 쇄신요구·야권 총공세 사면초가
당 원로들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 목소리 경청해야”
임기초 50%대에서 10% 후반대로 떨어진 지지율, 최후의 보루였던 여당에서조차 쏟아지는 쇄신 요구, 압도적 거대 야당의 총공세, 또 어디서 터져나올지 알 수 없는 녹취록 정국까지. 임기 후반기 시작을 일주일 앞둔 윤석열 대통령이 헤치고 가야 할 난제들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고집스런 침묵만 지키며 ‘불통’을 선택했다.
4일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리는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불참 사례가 없던 국회 개원식 참석 관례를 깬 데 이어 11년간 이어졌던 국회 시정연설 관행도 무시한 셈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역대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꼭 시정연설을 했던 것은 아니다”면서 “탄핵과 특검이 남발하는 정상화되지 않은 국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 정상화가 먼저라는 취지지만 야권에선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시정연설은 한해 국가를 꾸려갈 살림에 대한 신중한 설명의 자리”라면서 “국회 무시이자 국민 무시”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윤 대통령이 답해야 할 각종 의혹이 겹쳐지고 있는 점을 지목하며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물밑으로 시정연설 참석을 요청하는가 하면 여권 인사들도 공개적으로 참석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묵살됐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이 돌을 던져도 맞을 각오로 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19% 지지율을 기록한 후 주말 내내 여권에선 쇄신 필요성이 빗발쳤지만 이 역시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 분위기다. 들끓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선 신속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지만 당장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나 쇄신책 등의 발표는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조사는 10월 29~31일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무선전화 가상번호로 실시한 여론조사로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다. 구체적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굵직한 외교이벤트 후 국민과의 직접 소통 기회 등을 마련하기 위해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가 나눈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지만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서두를 가능성을 일축한 셈이다.
대통령과 참모진의 위기 인식과 정국 타개 방안에 대한 요청은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단은 주말 중 긴급 간담회를 연 후 “대통령은 취임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 목소리를 잘 경청하고 판단해달라”고 고언을 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대선때처럼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한편,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윤 대통령을 대신해 시정연설에 나선 한덕수 국무총리는 “흔들림 없는 건전재정 기조 아래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했다”면서 “재정사업 전반의 타당성과 효과성을 재검증하여 총 24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채무비율은 48.3%로 전년 대비 0.8%p 소폭 증가하는 수준으로 억제했다”며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은 약자복지, 미래대비 투자 등 국가가 해야 할 일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고 밝혔다.
김형선·박소원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