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트럼프, 누가 어떻게 견제할까
“빠르고 무자비하게 움직일 것” 우려 … 한국 ‘현금 인출기’ 인식도
트럼프가 물었다.
“한국의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어째서 미국이 한 해 10억달러를 내고 있소?”
트럼프는 한국 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에 격노했고, 그것을 한국에서 철수시켜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옮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매티스(전 미 국방장관)가 말했다.
“우리는 한국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을 돕고 있는 겁니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9.11테러에 대한 취재로 두차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밥 우드워드 기자의 베스트셀러 ‘공포’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이야기다.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미 FTA도 파기 시도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을 종료시키려 했던 아찔한 순간도 소개한다. 게리 콘 전 백악관 최고위 경제자문역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책상위에 놓인 외교서한 한통을 보고는 놀란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이었다. 서한에는 한미FTA 협정의 종료를 통보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한해 180억달러에 달하는 대 한국 무역적자에 불만을 품은 트럼프가 이를 파기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콘은 한미FTA를 폐기할 경우 두 나라간 경제협력은 물론 군사동맹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칫 미국 국가 안보에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콘은 책상에서 서한을 치워버렸다.
“내가 대통령 책상에서 서한을 훔쳐냈지. 그 양반이 서한을 못 보게 하려고 했거든. 그 양반 그걸 절대 못 볼거야. 난 이 나라를 지켜야 했지.”
우드워드는 트럼프를 17차례 인터뷰했다. 모두 트럼프가 제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우드워드는 그를 바탕으로 ‘공포’(2018년 출간)와 ‘분노’(2020년)라는 두 권의 책을 냈다. 책 속에는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대 한국 무역적자 문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와 관련된 비화들도 상당한 비중으로 실려 있다.
그런 트럼프가 돌아왔다. 트럼프는 “미국민을 위한 장대한 승리로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모든 것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세계 무대에서 미국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국가에 아메리카 퍼스트 방식으로 접근, 뒤집겠다”고 약속했다.
‘돌아온 람보’ 기세
마치 ‘돌아온 람보’의 모습이다. 트럼프의 무서운 기세 앞에서 미국민과 동맹국들조차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면 한국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트럼프는 한국을 ‘현금인출기’라고 부른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연간 100억달러는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바이든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의 폐지 가능성도 여러차례 언급했다. IRA나 칩스법이 폐기·축소되면 우리나라 2차전지와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대미 투자·생산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당장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는 지난달 초 2026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으로 타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기존 경제협약도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트럼프는 중국과 교역 관계를 축소·단절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공약도 내세웠다. 몇달 전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이 적정 수준의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가 나토를 먼저 공격하도록 부추기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문제는 트럼프를 저지할 어느 누구도 어떤 방안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이번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연방 대법관도 9명 가운데 6명이 보수 성향이다. 트럼프가 입법·사법·행정 권력을 모두 틀어쥘 수 있게 된 것이다.
트럼프 1기 때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전통적인 공화당 주류 혹은 네오콘들의 견제가 있었다. 트럼프는 감세와 국경장벽 건설,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 건강보험개혁법(ACA·Affordable Care Act, 오바마케어) 개정 등에서 번번이 견제를 당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난 것도 볼턴으로 대표되는 네오콘들에게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트럼프는 공화당의 주류로 부상할 만큼 힘을 키웠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도 강력한 대중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공화당을 ‘트럼프당’으로 바꿔 놓았다. 이제 트럼프의 주변엔 부통령 당선인인 J.D. 밴스 상원의원과 백악관 비서실장에 지명된 수지 와일스 공동선대위원장, 마이크 존스 하원의장,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거론되고 있는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일 대사, 경제적 뒷배를 자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쟁쟁한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미국의 위태로운 선택
당장 트럼프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와 그의 조직이 공화당을 거의 장악했지만 더는 출마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헌법은 그를 2선으로 제한한다”고 환기시켰다.
NYT는 7일 ‘미국은 위태로운 선택을 했다(America Makes a Perilous Choice)’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의 당선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NYT는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인들은 47대 대통령으로부터 초래될 국가 및 법률에 대한 위협을 분명히 주시하면서 국가와 국민, 법률, 제도, 나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권리를 행사할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심각한 결함을 알면서도 그가 높은 물가와 이민자 유입, 허술한 남부 국경, 불평등을 초래하는 경제정책 등을 바꾸고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 이제 모든 미국인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을 쌓고 적들을 처벌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둘 가능성이 높은 트럼프 행정부를 경계해야 한다.”
세계도 트럼프를 경계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트럼프2기 관세인상에 긴장하는 미 무역 파트너들(US trade partners brace for tougher tariffs in Trump’s second term)’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트럼프가 “빠르고 무자비하게(quickly and ruthlessly)”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을 지낸 에버렛 아이센스타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한 말은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이센스타트는 “그는 관세를 어떻게 할지 투명하게 밝혀왔고 선거에서 이겼다”면서 “미국 국민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상가 출신인 드미트리 그로주빈스키는 트럼프가 자신의 영향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주빈스키는 “글로벌 성장 엔진인 미국으로부터 배제되는 상황에 직면할 경우 각국의 지도자들은 무릎을 꿇으며 양보하거나, 최소한 반격을 함으로써 협상테이블에 올릴 영향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과연 트럼프 2기에 잘 대비하고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7일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하고 이른 시일 내 만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트럼프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으로 대승을 거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간 좋은 협력 관계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미국 대통령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윤 대통령이 드센 트럼프를 상대로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통상협상, 남북문제 등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트럼프가 손을 벌리기도 전에 스스로 현금인출기 역할을 자임하는 ‘봉’ 노릇을 하는 건 아닐까? 일각의 우려대로 남북문제나 동북아 문제에서 남한만 ‘패싱’을 당하는 건 아닐까? 그야말로 내우외한(內憂外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