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근로자수에 따른 71년 차별 끊을 때다
“직원 30여명을 고용해 부산지역 여러 곳에서 가스충전소를 운영하던 A사는 2018년부터 충전소 단위로 쪼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들었다.”
고용노동부가 9월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든 사례다. A사는 근로자 53명의 임금 1억8200만원 체불을 포함해 10건의 노동법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A사는 왜 멀쩡한 기업을 쪼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들었을까. 이유는 현행 근로기준법(근기법) 11조 적용범위에서 ‘상시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한정해 5인 미만 사업장은 배제했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은 주 52시간 제한, 연차유급휴가,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 휴업수당, 생리휴가 제공의무, 부당해고 구제 등을 적용받지 못한다. 직장내 괴롭힘 조항도 적용받지 못하고 관공서 공휴일과 대체휴일에도 쉬지 못한다. 다만 최저임금과 퇴직급여만 법률로 보장받고 있을 뿐이다. 노동법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에서도 배제됐다. 지난해 산재보험 유족급여 지급 승인 사고사망자 812명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이 34%(278명)를 차지했다. 산재사망도 근로자수로 차별하고 있는 셈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상시근로자수 ‘5인 미만’으로 등록돼 있지만 ‘3.3%의 사업소득세’를 내는 사업소득자를 합산하면 5인 이상 사업체수가 2018년 6만8950곳에서 지난해(귀속연도 2022년) 13만8008곳으로 2배 이상 늘었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신고됐지만 사업소득자를 합칠 경우 300명이 넘는 사업장도 389곳이나 됐다. 노동법을 회피하기 위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근기법은 1953년 5월 10일 제정할 때부터 적용범위를 근로자수로 제한해왔다. 하지만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근로자수로 근기법을 차등 적용하는 해외사례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오늘(13일)은 54년 전인 1970년 전태일 열사가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날이다. 전태일재단은 올해 추도식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는 메시지를 제시했다.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낸 김문수 고용부 장관도 “대한민국 국격에 맞지 않는다”며 영세사업장 근로자 보호를 위한 근기법 개정의 필요성은 말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근로자수에 따라 누릴 수 있는 노동법상 근로자 권리가 달라진다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대한민국 헌법 11조에도 어긋난다. 노·사와 정부·국회는 영세사업장 근로자 보호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법·제도 정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남진 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