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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외감법의 성공적 정착, 중견회계법인 역할에 달렸다

2024-11-18 13:00:03 게재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신외감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5년이 되었다. 신외감법은 기업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감사보고서 품질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으며, 다수의 연구 결과 이러한 목표는 상당 부분 달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제도가 정착하고 본래의 효과를 지속하려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감사 품질은 크게 ‘전문성’과 ‘독립성’으로 결정된다. 금융당국은 이를 보장하기 위해 신외감법에 ‘등록회계법인제’와 ‘주기적 지정제’를 도입했다. 등록회계법인제는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감사인만이 상장회사를 감사할 수 있도록 해 전문성을 담보하려는 제도다. 주기적 지정제는 금융당국이 기업 감사인을 직접 지정함으로써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설계되었다.

현재 등록회계법인은 41개이며, 이들이 상장사 감사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은 기존 자유수임제보다 더 높은 감사보수를 지급한다. 이는 감사 품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특혜를 받은 등록회계법인 일부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등록회계법인, 특혜받는 만큼 책임도 커

등록회계법인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통합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요건이다. 통합관리체계는 회계법인의 인사, 자금 관리 등 경영 전반을 체계화해 관리 일관성을 확보하고 감사 품질을 보장하려는 장치다.

과거에는 대형 회계법인을 제외한 다수의 회계법인이 소규모 팀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소규모 기업 위주의 감사시장에서는 이러한 운영방식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되면서 회계법인들이 대형 상장사 감사를 맡을 기회가 늘어났고 이로 인해 통합관리체계의 필요성이 커졌다.

문제는 일부 중견회계법인들이 이러한 체계를 형식적으로만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사 품질 제고를 위해 자원을 통합하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만 많은 중견회계법인은 오히려 비용절감을 위해 등록법인을 위한 필수요건만을 충족하는 데 그치고 있다.

특히 일부 법인은 전문성 유지를 위한 투자를 줄이고, 단순히 회계사 수를 늘리기 위해 회계사들에게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통합관리체계의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통합관리체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단순한 법적 의무를 넘어 감사 실패를 방지하고 이해관계자들의 투명성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핵심 과제다. 금융당국이 이를 충족한 회계법인만 등록회계법인으로 지정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부 등록회계법인은 감독당국의 관리가 과도하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이는 특혜를 받는 등록회계법인의 책임을 간과한 잘못된 주장이다. 등록회계법인은 부여된 지위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며,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품질관리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중견회계법인들이 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감사 업무에 도입하기 위해 전산 감사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하고, 단순 반복 업무에는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 Robotic Process Automation) 기술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조직의 체질을 개선하고 감사품질 향상을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중견회계법인, 품질관리 책임감 가져야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중견회계법인 스스로가 통합관리체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품질관리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정책당국 또한 통합관리체계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법인에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신외감법의 성공적 정착은 중견회계법인의 역할에 달려 있다. 중견회계법인이 등록회계법인 요건에 맞게 운영 형태를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감사 품질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신외감법은 한국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정준희 대구대 회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