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관리 강화 안하는 등록회계법인 생존 갈림길…경영 여건 악화

2024-11-21 13:00:01 게재

빅4 제외한 등록법인, 매출 2.8% 감소에도 품질관리 투자 확대 요구에 직면

금감원, 내년 2차 품질관리 감리 … 시정권고 이행 못하면 ‘등록 취소’ 가능

회계업계가 등록회계법인들을 중심으로 향후 M&A(인수·합병) 등 지각 변동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기둔화 여파로 매출 증가 추세는 꺾였고 올해는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소폭 증가하는데 그친 회계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회계법인 중에서도 상장회사 감사업무를 맡고 있는 등록법인들은 대형 회계법인인 빅4를 제외하면 지난해 매출이 줄었다. 하지만 품질관리시스템 개선과 강화를 위한 투자 확대 요구에 직면해 있어 경영 상황이 녹록치 않은 실정이다. 감사인등록제도 도입에 따라 금융당국이 상장회사 외부감사를 맡은 이들 등록법인들에 대해 감사품질 강화를 계속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등록법인 전체에 대해 2022년 하반기부터 실시한 품질관리 감리를 내년 상반기에 마무리한다. 41개 등록법인 중 상당수는 ‘상장법인 감사인등록요건’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다. 제재는 시정조치와 ‘감사인 지정점수’ 감점 조치 등이다. 지정점수가 깎이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지정받는 감사대상 상장법인이 줄어들기 때문에 등록법인들은 매출에 타격을 받는다.

감사품질 관리와 관련해 등록요건을 위반해 받은 시정권고 조치는 이후 개선을 해야 하고 실제로 개선이 돼서 이행되고 있는지 금감원이 다시 확인할 예정이다.

금감원이 내년 하반기부터 2차 품질관리 감리에 나서면 지적을 받은 시정권고 조치가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집중적으로 보게 되고, 중대한 위반이 개선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 최대 ‘등록 취소’ 조치까지 취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품질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록법인들은 앞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등록 취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적을 받아 감사인 지정점수가 계속 깎이면 매출 감소로 인해 회계법인을 운영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등록법인들은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품질관리시스템을 갖출 수밖에 없고,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20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사업연도 회계법인 사업보고서 분석결과에 따르면 빅4 회계법인(삼일 삼정 안진 한영)을 제외한 등록법인 매출은 1조5027억원으로 전기 대비 434억원(2.8%) 감소했다. 회계법인의 한 대표 회계사는 “올해는 매출이 더 줄었다”며 “등록법인 중에서도 중소형 회계법인의 어려움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소속 회계사가 100명을 넘는 회계법인은 22곳이다. 이중 200명을 넘는 곳은 10곳뿐이다. 빅4 회계법인이 최소 1000명 이상의 회계사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회계업계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품질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려면 300명 안팎의 회계사를 유지하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 300명 이상이거나 비슷한 수준(신한회계법인 298명)의 회계법인은 모두 8곳이다.

금감원은 “회계법인은 충실한 외부감사를 위해 규모에 걸 맞는 품질관리시스템을 갖추고 법인 전체에 이를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관리체계를 갖춰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영업에 치중한 무리한 수임 또는 외부감사 자원의 불충분한 투입 등으로 감사품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형 회계법인들이 등록법인을 유지하려면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한 M&A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등록법인인 진일 회계법인과 세일원 회계법인이 합병했다. 진일 회계법인이 세일원을 흡수합병하고 권리와 의무, 지위를 승계했다. 소속 회계사가 50~60명 수준인 두 회계법인의 합병으로 소속 회계사가 100명이 넘는 태일 회계법인이 새롭게 출범했다. 등록법인은 41개에서 40개로 줄었다.

회계업계에서는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이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외부감사인 지정을 사실상 빅4 회계법인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중견회계법인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이 같은 조치는 실제로 중견회계법인들의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품질관리 강화를 위해 회계법인들이 몸집을 키워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금융당국의 요구가 현실에 맞게 이뤄져야 하고, 빅4 수준에 버금가는 회계법인 육성을 위해서는 빅4 중심의 정책 방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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