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⑩ 비진도 산호길
궁궐만한 고래, 마당만한 가오리가 뛰어놀던 섬
통영의 비진도(比珍島)는 통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수욕장을 가진 섬이다.
비진도에는 백섬백길 9코스인 ‘산호길’이 있다. 산호길은 비진 외항을 출발해 선유봉을 오른 뒤 노루목과 수포마을을 거쳐 다시 비진 외항으로 돌아오는 둘레길이다. 전체 길이는 4.1km에 불과하지만 선유봉(312m)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하지만 선유봉 미인도 전망대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신선이 놀다 간 산봉우리란 이름이 과장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야말로 이름처럼 보배(珍)에 견줄(比)만 하다. 선유봉 정상을 지나면 내내 산허리를 따라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비진도에는 내항과 외항 두 개 마을이 있는데 내항은 안섬 혹은 안 비진, 외항은 밧목 혹은 바깥 비진이라 한다. 통영 쪽으로 가까운 마을이 안 비진이고 큰 바다에 가까운 마을이 바깥비진이다. 과거에는 수포와 파정개 두 작은 마을도 있었지만 지금은 폐촌이 되고 말았다.
선유봉 하산 길에 들르게 되는 수포에는 새로 생긴 비진암이란 암자만 하나 있다. 수포에는 본래 여러 가구가 살았는데 주민들이 강제로 마을을 떠나야 했다. 납북어부 사건으로 한참 시끄러운 뒤끝이었다.
1977년 통영호 납북 사건으로 비진도 이웃 섬 부지도의 한 어부가 납북됐다. 부지도에 살던 어부는 장어통발 어선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러 온 낯선 사람(간첩)에게 선급금을 받고 따라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다시 외항으로 돌아오면 아름다운 산호빛 해변이 펼쳐진다. 비진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은 비진도 안섬과 바깥섬을 연결해 주는 통로에 위치해 있는 양면 해변 중 하나다. 양면 중 서쪽은 모래 해변이고 동쪽은 몽돌 해변이다. 바다 위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해변이다. 수심이 얕아 물놀이 하기 좋고 해변 언덕에는 해송 수십 그루가 서 있어 그늘도 좋다. 고개 넘어 내항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된 팔손이나무 자생지가 있다.
통영 바다에도 거대한 고래떼가 헤엄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고래 때문에 생긴 지명이 비진도에도 남아 있다. 고래건턱여다. 고래 건턱여는 비진해수욕장 동남쪽 상투바위 안쪽의 해안 절벽 아래에 있는 염등(암초)이다.
일제강점기 어느해, 멸치떼를 쫓던 고래 한 마리가 이 염등에 턱이 걸려 빠져나가지 못했다. 고래를 발견한 비진도 주민들은 배를 타고 염등으로 모였다. 주민들은 도끼와 톱으로 고래의 살을 잘라내서 너럭바위에 말렸다. 온 섬사람들이 다 달라붙었지만 고래를 전부 해체하는 데 꼬박 열흘이나 걸렸다. 섬사람들이 부러 고래잡이를 하지는 않았지만 떠밀려온 고래는 식량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고래를 해체하던 마을 사람 하나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살펴보니 상투가 보였다. 해체를 하다 미끄러져 고래의 음부에 빠졌는데 온 몸이 다 들어가고 머리끝 상투만 달랑 남았던 것이다. 압사 직전의 사람을 놓고도 동네 사람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다들 배꼽이 빠지게 웃고 상투를 움켜잡아 끌어냈다. 고래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만한 이야기다. 말린 고래고기는 집집마다 나누어져서 춘궁기에 요긴한 양식으로 쓰였고 고래가 턱이 걸렸던 염등은 고래건턱여라는 이름을 얻었다.
궁궐만큼 큰 고래와 마당만한 가오리, 염소를 통째로 삼키고 바다를 유유히 헤엄쳐가던 구렁이, 산란 철이면 섬으로 찾아오던 상어떼들. 비진도에는 믿기지 않는 전설처럼 거대한 대물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