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잠재성장률 밑돌 위기…기준금리 추가 인하 빨라지나
트럼프 당선, 수출·내수 동반 부진 등 우울한 경제전망 일색
물가는 안정세 지속 … 주담대 폭증세는 일부 꺾이는 양상
한은, 다음주 통화정책결정 … 내년 성장률 하향 수정 가능성
내년도 경제전망이 온통 우울하다. 일각에서는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기간 이어지는 내수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꺼낼지 주목된다.
한은은 지난달 11일 기준금리를 기존 연 3.50%에서 3.25%로 인하하면서 올해 안에 추가 인하는 없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창용 총재는 당일 기자설명회에서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5명 모두 우리가 보고 있는 전망경로에 변화가 없다면 기준금리 연 3.50%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은 안팎과 시장에서도 사실상 내년 1월(16일) 금통위까지는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 총재가 전제로 언급한 ‘우리가 보고 있는 전망경로’에 변화가 생겼다는 평가다. 우선 올해 3분기 경제성적표가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한은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2024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은 0.1%에 그쳐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올해 1분기 깜짝 성장(1.3%)과 2분기(-0.2%) 역성장으로 기저효과에 따라 내심 0.5% 안팎 예상했던 한은도 충격을 받았다.
대외 변수도 당초 전망 경로보다 악화했다는 평가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일부 벗어난 흐름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세계 무역환경과 금융시장 등 변수와 불확실성이 커졌다. 그나마 우리 경제를 떠받쳐왔던 수출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달 31일 트럼프 당시 후보가 당선돼 미국의 관세정책이 바뀔 경우 “연간 수출이 450억달러 감소하고, 실질 GDP는 약 0.29~0.67%p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제기구와 투자은행 등의 내년도 한국경제 전망이 하향 수정되는 점도 이러한 안팎의 경제상황을 반영한다는 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9일 내년도 한국 실질GDP 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2%p 낮춘 2.0%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그러면서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고, 하방 리스크가 더 큰 편”이라면서 1%대 성장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정부도 잇따라 희망적 관측에서 후퇴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0월 경제동향에서 그동안 유지했던 ‘견조한 수출 흐름’이라는 평가에서 ‘견조한’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데 이어, 11월 경제동향에서는 7개월 만에 ‘내수회복 조짐’이라는 표현도 뺐다. 향후 우리 경제가 내수와 수출 모두 만만치 않은 환경에 놓여 있음을 정부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우울한 경제전망이 확산하는 가운데 한은이 오는 28일 수정 경제전망을 어떻게 내놓을지가 주목된다. 한은은 지난 8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보다 0.1%p 낮은 2.4%로 전망하면서도 내년 전망은 2.1%를 유지했다. 한은은 그러면서 내년 상반기(1.8%)와 하반기(2.4%) 전망치가 크게 엇갈려 이른바 ‘상저하고’ 성장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내년 하반기 경제가 비교적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 의문이다. 오히려 트럼프 당선자가 내년 1월 취임하고 본격적인 관세정책 전환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은은 올해 3분기 성장률도 당초 0.5%로 전망했지만, 0.1%에 그쳐 경제전망에 대한 신뢰성에 일부 타격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한은이 이번달 경제전망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소폭 하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크다. 한은 안팎에서는 2.0% 수준으로 낮출 것으로 보지만, 1.9%까지 하향 수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1%대 성장률 전망치는 정부와 한은이 그동안 강조했던 경제가 어렵지만 잠재성장률(약 2.0% 안팎)은 웃돈다는 진단이 무색해지는 일종의 마지노선”이라며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1%대까지 추락하면 역으로 경기부양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다는 의미여서 한은도 통화정책 전환의 속도를 높일 명분이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추가로 완화할 수 있는 여건은 다른 경제지표와 흐름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무엇보다 물가 상승세가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까지 둔화하는 등 통화정책 결정의 상수인 물가 측면에서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의 부담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평가다. 한은이 7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검토했지만 포기한 이유로 지목한 부동산시장 과열과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 급증도 최악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민수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최근 “금융당국의 2단계 스트레스DSR 등 거시건전성 정책과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 등으로 9월 들어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3분기 가계신용(1913조8000억원)이 사상 처음 1900조원을 넘어서는 등 불안정 요인이 있지만, 4분기 이후 주담대 증가폭이 둔화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편 최근 변동성이 커지는 외환시장 흐름은 통화정책 결정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달러당 1400원대에서 움직이는 환율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연준(Fed)이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두차례 연속 정책금리를 인하하는 등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한 점은 한미간 금리격차 변수를 완화해주는 요인이다. 한은도 양국 금리 격차가 외환시장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통화정책을 결정한다고 강조해왔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