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외교수장 ‘우크라 파병론’ 첫 언급
휴전 밀어붙일 트럼프 2기 대응책 부심 … 나토는 젤렌스키 ‘가입’ 주장에 난감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 EU 새 집행부가 출범 첫날인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가운데, 외교 수장인 칼라스 고위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우크라이나 파병론’을 처음 언급했다.
이날 칼라스 고위대표는 키이우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 파병 문제에 대해 “나는 어떤 옵션도 배제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 문제에 대해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힌 것으로 안사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특히 사견임을 전제로 향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휴전 협상 시 EU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면서 휴전 합의가 존중되는지 검증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든 이와 관련한 선택은 우크라이나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뒤 휴전이 이뤄질 경우 관리 차원에서 파병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칼라스 고위대표는 또 “만약 우크라이나가 어느 시점에 (전쟁에) 선을 긋기로 결정할 경우,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더는 나아가지 않도록 평화를 보장할 방법을 확실하게 논의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안전보장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라고 말했다.
EU 외교수장의 이같은 언급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발언에 뒤이은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영국 스카이뉴스 방송과 인터뷰에서 나토 가입이 승인된다면 러시아의 점령지를 즉각 찾지 못했어도 휴전 협상을 할 수 있다고 처음 시사했다. 그는 “휴전에 대해 말하려면 푸틴이 다시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일 자국을 찾은 코스타 상임의장 등 EU 신임 지도부와 만나 “생존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초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입 초청은 나토 가입 절차의 첫 단계다. 이와 함께 “우리가 러시아와 협상에 앞서 강해지려면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면서 “장거리 무기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코스타 상임의장은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침공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와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설득할 것”이라며 “러시아의 승리는 틀림없이 이미 그들과 함께 작전을 펼치고 있는 중국, 이란, 그리고 북한을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해 내달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우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실현되기 어려운 의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마지막이 될 나토 외교장관 회의가 오는 3~4일 열리지만, 우크라이나가 회의 목전에 ‘휴전 협상’의 선제 조건으로 나토 가입 초청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난감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나토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 요구에 현재까지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10월 초 취임하자마자 연일 주요 회원국들을 잇달아 방문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뤼터 사무총장도 지난달 26일 이후로는 공개 행보를 일단은 멈췄다. 나토 가입 초청을 전제로 한 우크라이나의 휴전 협상 구상에 적극 동조하기 어려운 나토 내부 사정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나토는 지난 7월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되돌릴 수 없는 경로에 들어섰다”고 선언했으나 회원국 중 미국과 독일은 물론 헝가리·슬로바키아·벨기에·슬로베니아·스페인 등 최소 7개국이 반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절차가 시작되면 오히려 전쟁이 커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달 27일 지명한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 지명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과 협상이 미국의 공식 정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 온 ‘종전 설계자’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구상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장기간 연기하는 대신 검증 가능한 평화협정과 안보보장을 제공하는 쪽으로 추진될 것으로 미 언론들은 관측하고 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