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

트럼프 2기 대응, 결론은 자생력이다

2024-12-04 13:00:01 게재

퍼펙트스톰이 불어닥쳤다. 트럼프가 경쟁자 해리스를 물리치고 미국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트럼프 승리의 가장 큰 원동력은 미국 중산층의 경제적 박탈감이었다.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흑인과 히스패닉, 심지어 젊은 유권자들도 돌아섰다. 지난 30여년간 세계화의 흐름으로 미국 전통 제조업들이 황폐화된 결과다.

그러니 트럼프 2기 정부의 성공 여부는 경합주 중산층의 경제력 회복에 달려 있다. 트럼프 공화당이 쓰는 용어로 그간 외국에 빼앗겼던 일자리들을 되찾아와야 한다. 중국을 포함한 수입품에 관세를 대폭 물려서 미국산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원가경쟁력도 높여야 한다. 철강 자동차와 같은 러스트밸트 지역 전통 제조업들도 다시 부흥시켜야 한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인플레이션감축법에 포함된 다양한 청정에너지 보조금 제도 중에서도 전기차 보조금 폐기를 우선 들고나온 것도 그 이유가 분명하다.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들이 포진한 디트로이트지역 중산층 유권자들을 의식해서다.

그러나 전기차가 미래 자동차 시장을 주도해도 그럴까? 지난해 전세계 승용차 신규 판매 4대 중 1대가 전기차였다. 시장은 정책이 아니라 소비자가 주도한다. 아이폰은 정부 보조금 정책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이 날개를 달아 주었다. 자율자동차를 비롯해 날로 진화하는 기술진보를 고려하면 전기차의 확산은 피할 수가 없다.

전기차산업은 이번 기회에 보조금 중독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확보해야 한다. 보조금 제도는 어차피 한시적 수단이다. 보조금 폐지는 전기차산업의 옥석을 가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기차가 경쟁력 있는 신산업으로 자리를 잡아 많은 일자리들을 만들게 되면 뼛속까지 사업가인 트럼프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전기차 선두주자 테슬라의 머스크가 트럼프 옆에서 미소짓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조금 중독 벗어나 경쟁력 확보해야

미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 배터리 기업들도 당황하기보다는 이번 기회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인 미국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보조금에 의존한 기존 사업계획들은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트럼프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 내 대표적인 화석연료 생산 지역인 노스다코다 주지사 더그 버검을 내무부장관으로, 셰일에너지 개발회사 리버티에너지 설립자인 크리스 라이트를 에너지부장관으로 각각 지명했다. 이들의 등장으로 파리기후변화 협약 재탈퇴를 비롯한 화석연료 의존 정책으로의 선회는 자명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분명한 역할이 있다. 미국 산업 전반의 원가를 낮추어 경쟁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화석연료를 풍부하고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산업도 이 기회에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진검승부를 펼쳐보기 바란다. 재생에너지 역시 언제까지 보조금에 목매달고 있을 수는 없다.

1990년대 독일정부의 발전차액보조금 제도를 시작으로 세계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 태양광은 현재 당시 대비 가격이 이미 96%나 하락했다. 전세계 태양광 모듈 생산의 80%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에 대한 공급망 집중 문제는 오히려 트럼프가 해결해 줄 수도 있겠다.

재생에너지산업은 그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얘기해 온 그리드 패리티의 위력을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발휘해 보기 바란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가 철저한 시장주의자임을 고려하면 저렴한 에너지 공급 수단이 다양해지는 것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탄소중립은 시장의 힘 활용이 관건

수년 전 국가 탄소중립 혁신전략 수립 작업에 참여하면서 필자가 내린 결론은 ‘탄소중립은 시장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환경운동만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과거 산업화시대처럼 정부가 주도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다. 우리도 언제까지나 보조금 제도에 기대어 시장을 유지할 수도 없다. 결국 소비자에게 탄소중립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게 하는 시장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야 한다. 그 핵심은 가격경쟁력을 통한 자생력 확보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이 주장의 공허함과 무기력함이 계속되고 있고 급기야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더 큰 펀치를 얻어맞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기회에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에너지전환 산업들이 자생력을 갖추기를 기대해본다. 다만 필자의 공허함과 무기력, 그리고 당혹감보다는 어느 누구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이 더 걱정스럽다.

손정락

카이스트 초빙교수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