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윤 대통령의 상황인식과 ‘계엄게임’

2024-12-06 13:00:04 게재

12.3 비상계엄령 사태 이후 들려오는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인식을 듣자니 참담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여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폭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상계엄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야당에 대해 경고만 하려고 했던 것” “국회에서 해제될 걸 예상하고 한 조치”라고도 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들의 용비어천가식 해석은 더 기가 막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내일신문에 “(계엄은)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말했다. 여당 의원총회에선 “대통령이 고독할 때 국민의힘이 말벗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모 의원의 자아비판(?)이 나왔다. 같은 땅, 같은 하늘에서 그날 밤을 경험한 게 맞는지 의심될 지경이다.

헌법을 자주 이야기하던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헌법 어디에 ‘경고성으로 계엄을 선포해도 된다’고 써 있나. 국회에서 해제될 것을 예상했다는데 만약 국회 봉쇄에 성공해 계엄해제가 신속하게 안 됐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 이쯤이면 큰 경고가 되었다 만족하며 자진해제하려 했나. 경고를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우리의 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은 대통령에게 어떤 의미인가.

여당 의원에게도 묻고 싶다. 대통령의 고독을 생각할 정신이 있으면서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생경하고 공포스러운 광경을 보며 아연실색했을 국민들 심정을 헤아릴 생각이나 해봤는가. 대통령의 고독과 비상계엄 선포는 도대체 어떤 논리구조로 연결되는 것인가.

어차피 회신받지 못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통령이든 여당 의원이든 그들만의 가상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의 인식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낀 사람이 기자만은 아닌 것 같다. 모 야당 대변인은 대통령이 계엄을 게임처럼 생각한 것 아니냐고 했다. 김연욱 새미래민주당 선임대변인은 “비상계엄이 게임이나 장난처럼 상대방을 윽박지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인식 그 자체가 놀랍다”고 논평했다.

비상계엄 이후 혼돈에 빠진 정국 속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이름없는 시민들이다.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촛불집회 자유발언에 나선 한 고등학생은 “민주주의가 이렇게 연약한 것인지 몰랐다”고 했다. “경고성으로 군인을 동원했다”고 천연덕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참으로 얼굴 두꺼운 대통령을 보며 우리 모두가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훼손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계엄선포가 전국민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시켜준 셈이니 그걸 고마워 해야 하는 건가. 참 웃프다.

김형선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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