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잇따라 인사권 행사…“빈껍데기 직무배제”
충암고 출신 최측근 국방·행안 사의수용
대통령실, 일정공지조차 없이 ‘마비’상태
“모두가 역사의 죄인 돼버렸다” 망연자실
‘2선 후퇴’ 입장을 밝힌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중이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의 직무배제를 약속했지만 윤 대통령이 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대통령의 권력 행사를 막을 방법이 없어 한계가 명확하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8일 윤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수용했다. 장관 인사는 대통령실 공지로 공개되지만 이 장관 사임은 행안부 공지로 알려졌다. 행안부가 이날 오후 3시반 경 배포한 입장문에서 이 장관은 “국민 여러분을 편하게 모시지 못하고 대통령님을 잘 보좌하지 못한 책임감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라면서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입장문과 함께 “이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고 그 사의가 수용됐다”며 사의 수용의 주체인 ‘대통령’을 뺀 기이한 공지를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2선 후퇴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인사권을 행사한 사실을 전면에 드러내기 어려우니 주어 없는 공지를 낸 것이다.
같은 날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후임으로 오호룡 국정원장 특별보좌관을 임명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인사는 계엄선포 3일 후인 6일 이미 단행됐다고 한다.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한 것은 공개된 것만 다섯 차례다. 5일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후임자로 지명했다. 6일에는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 임명안을 재가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실 참모들과 전 내각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윤 대통령은 충암고 출신 최측근인 김용현·이상민 두 장관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사표를 수리해준 점도 눈에 띈다.
야당에선 즉각적으로 반발이 터져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게 아니고 여전히 행사되고 있다”면서 “국민을 우롱, 기만하고 국민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권력이 명확하게 살아있는데 2선 후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건데 초보정치인 한동훈 대표가 권력의 속성을 전혀 모르고 일을 저지른다”면서 “빈껍데기 직무배제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매일 저녁 공지되는 다음 날 대통령 일정 공지조차 하지 않는 등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다. 8일에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열리는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도, 9일에는 매주 월요일 오전에 열리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대수비)도 열리지 않았다. 매주 월요일 점심 때 진행되던 윤 대통령과 한 총리의 주례회동도 취소됐다. 일부 대통령실 고위직들은 내란죄 수사에 대비해 휴대전화를 교체하거나 텔레그램 등 메신저 프로그램을 탈퇴하고 재가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직원들은 평일은 물론 주말도 계속 출근하며 비상체제를 유지중이지만 힘이 빠진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모두가 역사의 죄인이 된 것 아니겠냐”며 “무슨 힘이 나겠냐”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