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붕소중성자포획치료기가 일으킬 꿈의 암 치료

2024-12-10 14:21:20 게재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 양성자는 전자를 만나 수소를 만들고 수소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으며 수소경제란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에겐 친밀한 원소다. 양성자를 직접 활용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럼 중성자는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중성자는 양성자의 쌍둥이 형제와 같은 입자다. 중성자가 약간 더 무겁기는 하지만 이 둘은 질량이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중성자는 전기를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하가 없으면 전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전기를 띈 전자를 밀어내거나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즉 중성자는 원자의 전자구름을 만나도 아무런 반응하지 않고 소 닭쳐다 보듯이 그냥 스쳐 갈 뿐이다.

이렇듯 중성자는 우리 몸 깊숙이까지 편안하게 헤집고 다닐 수 있는 방사선이다. 그렇다고 모든 중성자가 물질을 100% 완전히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원자핵과 만나 원자핵을 들뜨게 할 수도 있고, 원자핵을 쪼개버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성자가 우라늄 핵을 쪼개버리는 것이다. 이를 핵분열이라 부른다. 핵분열 이후 중성자가 쏟아져 나와 다른 핵을 계속 분열시키는 과정을 우리는 연쇄반응이라 부른다. 원자력 발전의 근본원리다.

중성자와 붕소가 만나면 핵폭탄이 돼

우리 몸을 쑥쑥 뚫고 다닐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원자핵을 만나면 핵을 분열시키는 이 중성자만의 특성을 써먹을 데가 없을까? 예를 들어 뇌종양같이 수술로 제거가 힘든 암세포를 중성자를 써서 선택적으로 제거 한다든지 하는 그런 아이디어 말이다.

실제로 이는 가능하다. 중성자는 앞서 얘기한 대로 뼈든 살이든 우리 몸을 쉽게 뚫고 지나갈 수 있으므로 암세포까지 중성자가 도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 문제는 중성자 입장에선 상대가 암세포인지 정상세포인지, 뼈인지 살인지 전혀 구별하지 않고 지나쳐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성자가 암세포와 많이 부딪힐 수 있도록 만드는 교묘한 방법이 필요하다.

이 또한 가능하다. 핵물리학자들은 일찍이 중성자와 반응을 잘하는 원자핵들을 구별해 놓았다. 대표적인 물질이 바로 붕소다. 붕소는 주기율표 13족에 2주기에 속하는 알루미늄족 원소로 원소기호는 B다. 영어로는 보론(Boron)이라 부른다.

붕소는 생화학적으로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원소가 아니다. 필수 영양소도 아니니 일부러 먹을 일도 없다. 화학적으로는 미미한 존재감을 가진 붕소지만 중성자를 잘 흡수한다는 성질만큼은 다른 원소가 갖지 못하는 두드러진 특성이다. 붕소는 특히 열중성자라 불리는 낮은 에너지를 갖는 중성자를 잘 흡수한다.

붕소의 핵이 열중성자를 흡수하면 소위 핵반응이 일어나는데 양성자 5개와 중성자 5개로 구성되어 있던 붕소(B-10)가, 중성자 하나를 포획해 양성자 5개와 중성자 6개짜리 붕소의 동위원소(B-11)가 된다. 신기하게도 이 동위원소는 곧 리튬으로 변하면서 알파선과 감마선을 발생시킨다. 잠자던 붕소 핵이 중성자 한개를 먹고는 탈이 나서 리튬과 알파선 감마선을 내면서 뻥 터지는 것이다. 리튬뿐 아니라 알파선은 모두 강한 방사선이지만 짧은 거리만 이동할 수 있으므로, 가까운 주변 물질을 피폭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은 성질을 이용하면 이제 수술 없이 선택적으로 암세포만 골라 태워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를 것이다. 첫번째로 할 일은 암세포가 좋아하는 영양소에 붕소를 섞어 약물로 만들어 인체에 투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욕심 많은 암세포가 알아서 영양소를 배불리 먹어 암세포가 붕소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다음은 붕소와 핵반응을 할 열중성자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중성자를 대량으로 발생시키는 가속기를 만드는 일로 시작해, 만들어진 중성자를 식혀 열중성자로 변환시키는 일을 포함한다. 이런 일은 이미 가속기 물리학자와 핵물리학자가 오래전에 완성해 놓았다.

국내에서도 임상실험 성공 보고돼

자, 이제 환자의 몸속에 자리 잡은 암세포는 붕소로 가득 차 있고, 열중성자 세례를 받은 암세포는 붕소의 핵반응으로부터 나오는 방사선 피폭으로 괴멸하게 된다. 끝이다. 수술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암세포만 죽이는 기가 막힌 방법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바로 붕소중성자포획치료(BNCT, Boron Neutron Capture Therapy)라 불리는 꿈의 암 치료법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가천대학교 길병원에서 BNCT 장비를 만들었고 임상실험에도 성공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과학은 이렇게 한걸음씩 한걸음씩 암을 정복해 나가고 있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