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책임' 약속 지키려면 대통령 사퇴해야
내란 혐의 규명 위해 엄정 수사 필요한 상황
현직 대통령 압수수색·신병확보 난항 전망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며 이같이 밝혔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위헌·위법한 행위에 대한 형사적 책임도 지겠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하루 빨리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현직을 유지하는 한 엄정하게 수사해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경쟁적으로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한 수사에 나섰지만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이 ‘질서있는 퇴진’을 주장하며 윤 대통령의 권한이 유지되면서 수사 단계마다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헌법상 현직 대통령은 불소추특권을 갖지만 내란과 외환죄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는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9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윤 대통령과 공모해 내란을 일으킨 혐의가 있다며 사실상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의 최고 정점으로 지목했다.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은 현직에 있더라도 수사와 기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위를 이용해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윤 대통령 내란 혐의 증거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부터 어려움이 예상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대통령실이나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은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자료를 제출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됐다.
수사기관이 내란 혐의 입증을 위해 제대로 압수수색을 하려면 윤 대통령의 승낙이 필요하나 동의해줄 지는 불확실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담화를 통해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도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한 바 있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이뤄져왔다”며 “윤 대통령이 현직을 유지하는 한 강제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신병 확보도 간단치 않다. 원칙적으로는 내란 혐의가 적용되면 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구속까지 가능하다. 실제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윤 대통령의 체포 가능성에 대해 “요건만 맞으면 긴급체포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가능한 것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 경호를 받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수사기관이 신병확보에 나설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직 대통령은 내란죄로만 형사소추가 가능한 만큼 윤 대통령이 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해서는 협조하지 않으면서 수사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이 여전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갖고 있는 것도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란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윤 대통령이 ‘직무배제’ 약속을 어기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내란 혐의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위해서 윤 대통령이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내란죄 관련자들을 모두 찾아내 엄정하게 수사·처벌하라는 것이 현재 민의인데 이를 받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대통령이 직위를 유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선 수사기관들이 아무리 경쟁적으로 수사를 한다 해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의 기본인 압수수색이든 피의자 체포든 가장 큰 걸림돌이 대통령 경호처가 될 것”이라면서 “수사기관들이 대통령 경호처를 이른바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는 한 수사가 힘들 텐데, 결국 모든 문제가 대통령이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구본홍·김형선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