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세 판가름 났으나 안심할 수 없다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친위쿠데타, 내란행위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가 날로 치솟고 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결의안이 아슬아슬하게 통과되기까지 온 국민은 실시간으로 방송을 지켜보며 가슴 졸여야 했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총을 든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선 시민들의 용감한 저항이 없었더라면, 시민저항에 주저하며 과잉대응을 삼간 계엄군 장병들의 성숙한 태도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우리 민주주의의 저력을 새삼 느낀다.
전시·사변 등 비상계엄 명분 만들려 평양 무인기침투, 오물풍선 원점 타격설
실패로 끝난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겉보기에 허술해 보인 것과는 달리 나름 치밀한 계획 하에 오랜 기간 준비된 내란행위였음이 시간이 흐르며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계엄에 직접 동원된 특전사 수방사 방첩사 정보사 등 군 인사들의 증언이나 폭로가 이를 뒷받침한다.
주지하다시피 비상계엄 선포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로 한정돼 있다(헌법 제77조 1항).
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당시 상황이 위 요건에 전혀 걸맞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윤석열은 계엄해제를 결의하려는 국회에 군병력 난입을 지시하고, 심지어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특전사령관에게 직접 전화하기까지 했다. 이에 더해 유사시 북한에 침투해 파괴활동을 하는 정보사 특수부대 HID요원들까지 동원해 소요사태를 일으키려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윤석열은 왜 최소한의 명분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하게 비상계엄을 선포했을까? ‘명태균 녹취록’ 파문으로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불법적인 공천개입 정황이 폭로 된데다, 야당이 언제 김용현 국방장관을 탄핵할지 모른다는 초조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윤석열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만들기 위해 벌여온 것으로 추정되는 수법들을 곰곰 되짚어보면 아찔해진다. 자칫 한반도에서 국지전 또는 전면전에 준하는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뻔했다.
북한 지도부를 자극하는 대북전단 살포를 방관 내지 지원하고,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가 하면,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했다. 특히 지난 10월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대북전단을 버젓이 살포한 것은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유도하려 한 도박과도 같은 노골적인 ‘북풍 유도’였다. 예상(기대)과 달리 북한이 ‘말 폭탄’으로만 대응하면서 이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해 김용현 국방장관이 김명수 합참의장에게 살포지역 ‘원점 타격’을 ‘주문’했으나 합참의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다는 군 내부 ‘폭로’는 윤석열이 ‘전시·사변 비상사태’ 조성에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짐작케 한다.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면 이를 명분삼아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 1호에 나온 대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모든 언론·출판을 계엄사 통제 하에 두는” 반민주적 조치를 확대했을 터다. 궁극적으로 야당이 장악한 국회를 부정선거였다고 뒤집어씌워 해산한다는 계획을 세웠음직하다. 계엄군이 선관위 3곳을 점거해 전산 서버를 확보하려 한 데서 잘 드러난다.
국격 추락시키고 경제·외교 위기 초래 … 즉각 탄핵해야
국제사회의 평가는 냉정하다 못해 싸늘하다. ‘민주주의 모범사례국’으로 일컬어지던 대한민국에서 어찌 이런 반헌법적 폭거가 자행될 수 있는지 의아해 한다. 국격 추락은 물론이고 환율, 주가 등 경제위기가 현실화하며 대외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을 내세우며 한미동맹 강화로 밀월을 자랑하던 미국은 당혹해하며 이례적으로 노골적인 불쾌감과 비판적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는 터에 만만해 보이던 윤석열이 아무 상의도 없이 멋대로 전쟁위기를 촉발하는 행태를 그저 두고만 보지는 않겠다는 자세다.
권력을 잃고 감옥에 가느니 이판사판 언제라도 전쟁위험을 다시 부를 수 있는 ‘비정상적이고 위험천만한 윤석열’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국민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스스로 하야하지 않는다면 헌법에 따라 탄핵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유혈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12·12하극상을 벌인 날이 45년 전 오늘이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