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정치권의 민낯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는 선택이다.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맡길 대리인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선택받은 이가 그 이유를 망각했을 땐 부여했던 권한을 회수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게 탄핵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동력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선택권을 극단적으로 외면할 수 있다는 ‘징조’가 엿보였다. 국민이 정당하게 선택한 국회에 총부리를 겨누고 국민의 기본권을 차단하려는 계엄과 포고령을 선포한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였다.
국민의힘 의원 85명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에 반대 입장을 냈다. 기권, 무효표까지 합하면 ‘즉시 직무정지’에 명시적으로 찬성하지 않은 의원은 80%를 훌쩍 넘는다. 이들이 탄핵에 반대한 이유는 ‘비상계엄에 문제가 있지만 민주당에 정권을 내줘선 안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란 혐의를 ‘고도의 통치행위’로 감싼 이도 있었다.
이들의 판단 근거엔 ‘탄핵’이나 ‘즉시 직무정지’에 찬성하는 70~80% 국민의 의견은 없었다. ‘기득권 지키기’만 보였다. 계엄군이 그들이 있었던 곳에 들어가 끌어내려 했거나 체포 대상에 올라 체포조가 보내졌다 해도 동일한 판단을 했을지 궁금하다. 4월 총선 참패 후 유권자에게 머리 조아리며 한 ‘약속’은 벌써 내버린 모양이다. 임기가 3년 반이나 남았고 ‘유권자는 1년이면 잊어버린다’는 한 중진의 생존비결에 공감했을 수도 있다.
이에 앞서 민주당에서도 지지자들의 선택을 정무적 판단으로 외면한 ‘역사적 사례’가 있었다. 금융투자소득세와 가상자산 과세는 민주당 주도로 오랫동안 설계하고 추진했던 과제였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 주도로 ‘민주당의 원칙’은 쉽게 뒤집어졌고 당내 의원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했다.
민주당이 유지해왔던 부자감세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과 당헌에 명시한 조세 원칙은 훼손됐다. 토론의 행위는 있었으나 설득은 없었다. 모양은 민주적이었지만 결정은 독단적이었다. 민주당의 원칙과 정체성을 보고 지지해온 유권자들의 선택을 외면한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애초 금융투자소득세 과세에 압도적 찬성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중도층을 겨냥한 이 대표의 행보 앞에선 쉽게 무시됐다.
거대양당은 국민들의 소환권이 없는 현실에서 선택권을 가진 국민들의 목소리보다는 정무적 판단에 기대고 있다. 때로는 기득권을 위해, 때로는 대선 승리를 위해 언제든 국민 여론이나 정체성·원칙을 외면할 수 있다는 신호다. 현재로서는 브레이크가 없다.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는 듯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 경고로 읽힌다.
박준규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