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이후’를 생각한다 ② 허술한 계엄법
국무위원 모두 반대해도 막을 수 없었던 ‘비상계엄 선포’
윤 대통령, 국회 가결 이후 3시간 30분동안 계엄상태 유지
국무회의 심의 들러리 … “국무회의나 국회 승인 받아야”
헌법 따라 국회서 해제 건의하면 ‘자동 해제’ 명문화해야
계엄 특별조치 대상서 입법부 뺀 헌법 규정도 계엄법에 없어
계엄법은 너무 허술했다. 헌법은 계엄 대상에 입법부를 제외시켰지만 계엄법은 이를 담지 않았다.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심의를 의무화했지만 의결 조항은 빠졌다. 형식치레가 가능하도록 방치해놓은 셈이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했으나 곧바로 해제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제도적 결함이다.
17일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김선화 법제사법팀장(법학 박사)은 이달 초 토론회 발제문을 통해 “헌법에서 국회가 계엄해제를 요구하면 지체 없이 해제해야 한다고 정하는데, 계엄법에서 국무회의 심의 절차를 거치도록 정했다”면서 “국회의 해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무회의 심의절차를 늦추거나 하여 지연될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이미 국회의 판단으로 해제 요구가 있고 헌법에서도 지체 없이 해제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국무회의 심의는 불필요하다”며 “이를 정한 계엄법 제11조제2항은 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전후의 통제장치에 대해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후에 무슨 일이 =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께 선포된 비상계엄에 대해 국회는 다음날인 12월 4일 오전 1시 1분에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하지만 3시간 20분이 지난 4시 27분이 돼서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담화가 나왔고 실제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는 4시 30분에 끝났다. 윤 대통령은 당시 담화를 통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가결) 즉시 국무회의를 소집하였지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서 오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했다.
3시간 30분 동안 윤 대통령은 무엇을 했을까. 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은 ‘2차 계엄’을 모의했다고 주장했다. 계엄 사태 당시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은 윤 대통령이 계엄해제를 하지 않은 지난 4일 오전 3시, 계엄사령부 참모진 구성을 위해 육군본부에 있는 휘하 참모부장들에게 버스에 타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용산행 버스에 탑승한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의 고위 장교 34명의 직책은 ‘2017년 국군기부사령부 계엄 문건’에 적시된 계엄사령부 편성표 직책과 90% 일치한다고도 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한 이후 대통령이 곧바로 해제조치를 하지 않은 결과다. 김 팀장은 “이는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는 헌법 위반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했다. 헌법 77조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계엄법에서는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려는 경우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해 ‘해제의 효력기한’을 뒀다.
◆모두 반대했다는데 = 계엄 선포 직전의 국무회의 역시 의무화돼 있지만 무용지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계엄 선포의 위헌성을 걸러낼 수 있는 어떤 역할도 해내지 못했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대통령실 회신 내용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국무회의는 지난 3일 오후 10시 17~22분까지 5분간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열렸다. 국무회의는 개회·종료 선언도, 기록도 없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시간은 2~3분 남짓이었다”고 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국무회의는 국무회의가 아닌 게 맞나’라는 질문에 한 총리는 ‘동의한다’고 답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는 참석한 11명 국무위원 모두 ‘계엄 선포 반대’ 입장을 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결’이 아닌 ‘심의’를 의무화한 계엄법 절차를 사실상 무시했고 계엄선포에 대해 국회에 알리지도 않았다. 헌법과 계엄법에서는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고 명시해놨다.
헌법에서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계엄해제 요구권 등을 고려해 계엄의 효력 범위에서 입법부를 뺀 취지가 계업법에 들어가 있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이번에 계엄사령관이 내놓은 포고령에는 국회의원 등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고 실제 계엄군이 국회 본관까지 진입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려 했다.
김 팀장은 “계엄법에 ‘비상계엄시에도 국회의 기능과 국회의원의 활동을 방해할 수 없으며, 계엄군은 국회의원의 활동을 보호하고 국회기능을 수호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반할 경우 내란죄에 준하여 처벌한다는 규정을 둬야 한다”고 했다. 헌법 77조 3항에서는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며 계엄의 특별한 조치에서 ‘입법부’를 제외하고 있다.
◆쏟아진 법안들 =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계엄법 개정안이 쏟아져 발의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2.3 계엄령 선포 이후 38개의 계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계엄령 선포 이전엔 3개의 계엄법 개정이 제안됐다. 대체로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전후에 국회나 국무회의에 의해 통제하는 것이 골자다. 계엄 전 국무회의 의결(과반 또는 3분의 2 찬성)을 의무화하거나 국회의 승인 또는 동의를 받도록 주문했다. 국회에서 해제 요구가 가결될 경우엔 자동해제되는 방안도 포함됐다.
또 국회의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내용들도 들어가 있다. 계엄선포 이후 국회의원들에 대한 현행범 체포를 제한하거나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 요구안을 투표할 경우에 현행범이더라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계엄 선포 후 국회 통고 등 절차를 무시했을 경우 계엄선포가 무효화된다는 조항과 함께 계엄시 군이나 경찰의 국회 진입을 차단하거나 국회의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