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혼돈의 시대, 전환을 외치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의 성장은 과거 몇천년 동안의 정체기를 깨는 혁명이었다.” (경제학자 앤거스 매디슨 Angus Maddison)
지난 몇세기 동안 인류는 눈부신 진보를 이뤄냈다. 약 1만년간의 농업시대 동안 전세계 GDP는 연평균 0.01% 남짓 성장했지만 18세기 산업혁명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석탄을 연료로 한 기계화와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성장 속도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19세기에는 전 세계 GDP 성장률이 연평균 약 1%로 뛰어올랐고, 20세기에는 연평균 3%를 넘어서기도 하며 전례 없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이는 과거 수천 년 동안의 정체기를 고려했을 때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과였다.
이 같은 변화는 경제적 지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8세기 이전의 인류는 평균 수명이 30~40세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세계 평균 수명은 73세를 넘어서며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또한 전 세계 문맹률은 1800년대 88%에서 21세기 초 14%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는 지식과 교육이 소수의 기회가 아닌 보편적 수단이 되었다는 의미다. 200년 전 인류의 대부분은 전기조차 사용할 수 없었고 밤의 어둠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90%가 넘는 인구가 전기를 당연하게 사용하며 70%는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24시간 365일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승리했다. 전염병은 백신과 치료제로 극복했고, 기근은 농업기술 혁신으로 완화되었으며, 세계는 산업화와 기술화의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여전히 많은 도전 과제가 존재하나 기술 혁신의 황금기는 계속되고 있다. 증기기관 전기 내연기관 인터넷 인공지능은 범용기술로 혁신을 재촉하고 있다. 지구 위에서 인류의 발자취를 내려다보는 신이 있다면 수천년 동안 거의 멈춰 있었던 발전이 지난 200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눈부신 진보에 익숙해졌다.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 위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더 빠른 성장, 더 나은 삶, 더 많은 기회는 영원할 것 같았고 이 믿음은 인류의 낙관적인 비전이 되어 왔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낙관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우리는 미래의 꿈을 계속 행복하게 꿀 수 있을까?
혼돈과 무질서에서 가야 할 길
“무한한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광기와 다름없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지난 200년간의 성장은 화석연료에 의존한 지속 불가능한 번영이었다. 1972년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자원고갈과 환경파괴가 인류의 발전을 제한할 것이라 경고했다. 그 이후 환경적 노력으로 지역적인 토양 수질 대기오염 문제를 일부 해소하는데 성과를 거뒀으나 총체적 위기는 기후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1990년초 교토협약부터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이르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을 제외한 많은 국가에서는 실질적 전환이 본격화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부각시키며 기후변화 대응 여건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2024년 트럼프의 재등장은 혼돈을 키우고 있다.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화석연료 채굴 확대와 미국의 패권 강화를 주장하는 그의 재등장은 전환의 시계추를 뒤로 돌리고 있다. 단기적 경제성장과 에너지 안보가 강조되면서 기후목표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는 ‘현실’과 ‘합리성’을 내세워 탄소감축을 미래로 미뤘고, 그 결과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최하위를 기록하며 부끄러운 자리에 머물러 있다.
2024년 12월 말 현재 우리는 정치적 대혼돈과 어두운 경제 전망이라는 이중고에 빠져 있다. 여기에 더해 기후부채라는 새로운 위기가 삼중고로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혼돈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전환의 시기에 우리가 속도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다음 정부에 막대한 기후부채를 떠넘기고 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 결정할 것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이제 누가 정권을 잡든, 기후변화 대응 속도를 늦출 여유는 없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천천히 해도 된다는 주장은 단순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이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생각이며 우리를 더욱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다.
2024년 말의 혼돈이 하루빨리 종결되고 2025년부터는 새로운 희망과 도약의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은 전환의 기로에 서 있는 순간이다. 이 길에서 우리가 선택한 방향이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의 칼럼을 마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결단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