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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의 경제적 효과와 바람직한 제도설계

2024-12-27 13:00:02 게재

의학기술의 발전,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 급격한 합계출산율 감소로 한국의 고령화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급기야 2010년대 중반 이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고령화는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경제구조와 생산기술이 유지되면 경제활동인구의 지속적 감소로 잠재성장률의 하락이 불가피하고 고령인구부양지출 같은 비생산적 사회적 비용이 발생해 장기적 침체가 예상된다.

물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생산기술이 개발되고 정부와 기업이 고용과 생산측면에서 인구구조 변화에 적절히 대응한다면 노동공급량 감소가 야기하는 부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세대간 삶의 질 격차를 해소하는 측면에서 노동공급량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필요성 공감하지만 방식 합의 쉽지 않아

조속한 인구증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노동공급을 증가시키는 현실적인 방안은 해외에서 인력을 도입하거나 기존 노동자들이 더 오랫동안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외국인력의 유입은 단기적으로 생산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지만 기술훈련교육, 사회적 갈등 등의 추가비용을 발생시키고 국내노동자의 일자리를 잠재적으로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기존 노동자의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은 안정적인 노동공급량을 확보하는 동시에 노령층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장점이 있다.

특히 연금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이 연금수급시기를 늦추는 것인데 정년연장을 통해 연금공백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회전체적으로 단계적 정년연장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점에 대부분 공감한다.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제안된 정년연장제도 간에 기본적으로 고용안정성과 고용유연성 측면에서 명백한 상충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년연장의 첫번째 방안은 현행 60세 이상으로 규정된 법정정년을 65세 이상으로 개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고용안정성은 형식적으로 보장되지만 노동시장에서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고, 연공서열에 기초한 임금체계에서 기업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다.

둘째, 기존 법정정년은 유지하되 정년퇴직자를 기업이 다시 계약직 등으로 재고용하는 방안이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생산비용 증가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질 낮은 일자리와 낮은 임금으로 귀결될 가능성 높아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이 크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 이 같이 법적 정년연장과 정년 후 재고용을 두고 노사간 그리고 세대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며 양쪽의 의견 차이가 매우 커서 합의안의 도출이 힘들어 보인다.

정년연장 경제적 효과 논의 선행돼야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키는 최선의 정년연장방식의 도출을 위해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 사회적 논의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첫째, 정년연장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경제학에서는 정년연장의 경제적 효과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는 향후 10년간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p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연장은 경제성장 측면에서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인력공백을 메움으로써 잠재적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정년연장은 경기안정화정책의 재정여력과 효과를 증대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년이 늘어나면 사회전체적으로 노동임금이 증가해 세수가 증대되는 동시에 연금지급액이 줄면서 정부부채의 감소가 기대되어 경기침체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개입이 보다 용이하다.

고령화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자산을 노년층이 보유하는데 경기안정화정책의 일환으로 주로 사용되는 중앙은행의 이자율정책은 고령화사회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경기가 과열되면 중앙은행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려 기준금리를 인상하는데 이자율의 상승은 보유자산 가치를 증가시켜 오히려 노령층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자산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년연장은 자산효과를 억제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개별 경제주체 또는 집단간 소득과 자원 재분배 측면에서 분석한 정년연장의 경제적 효과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며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는 시기에는 정년연장이 고용공백에 도움이 되지만 지금과 같은 저성장 기조에서는 노동총량의 변화가 작아 정년연장으로 인한 노령층 노동공급의 증가는 결국 청년층 고용에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노동대체형 기술진보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 청년층 일자리를 잠식하는 노령층의 노동공급 증가는 오히려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업종이나 규모를 무시한 일괄적인 법적 정년연장의 경우 정년제를 운영하는 대기업에게만 적용될 가능성이 커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를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선호하는 청년세대의 일자리 기회를 줄일 수 있다.

더욱이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이 정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은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년연장의 유효성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년연장은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측면에서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기업의 규모나 업종, 그리고 세대간 노동의 불균형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청장년세대 이해를 제도에 반영할 필요

둘째, 경제학에서 강조되는 중요한 원칙은 정책과 제도의 효과는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대응해 행동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를 설계할 때 대상이 되는 경제주체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의 인센티브와 예상되는 대응방식을 반드시 내생화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세대인 청장년세대의 정년연장 유인을 이해하고 이를 제도에 반영해 정년연장의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유도해야 한다.

정년이 법으로 정해졌더라도 기본적으로 은퇴시기는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며 각종 사회•경제환경의 변화는 은퇴시기 최적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청장년층에게 향후 은퇴시기를 늦추고자 하는 다양한 유인이 존재한다. 우선 기대수명 증가는 은퇴시기를 미루고 보다 많은 저축을 유도한다. 전세계적으로 교육비 증가와 자녀들의 독립이 늦어지는 추세로 인해 저축이 늦은 나이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은퇴시점 임금이 일생에서 가장 높은 것을 고려하면 은퇴시점에서 저축을 통한 부를 축적하려는 유인은 더욱 커진다. 더욱이 앞으로 자산의 투자수익률이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청장년층은 더 오랫동안 일을 하며 저축을 해야 하는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이 같은 금전적인 유인 외에도 개인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자 자발적인 정년연장을 도모한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은퇴는 인생에서 가장 급진적인 변화이며 은퇴 직후 동년배에 비교해 심혈관질환이나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40% 더 높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질병에 취약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은퇴 후 가장 큰 지출은 의료관련 지출인데 고용상태를 유지함으로써 건강보험 혜택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결국 바람직한 정년연장 설계의 핵심은 노동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경제논리를 기반으로 노사간 그리고 세대간 갈등과 불균형을 최소화하며 지속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정년연장은 중장년층 또는 대기업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광범위한 논의를 통해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김영세 성균관대 교수,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