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탄핵정국 불확실성에 기업들 고사 위기

2024-12-27 13:00:03 게재

최근 만난 기업 관계자들은 “불확실성이 서둘러 해소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판인 한국경제에 12.3 내란사태라는 폭탄이 터지면서 위기의 정도나 강도, 방향이 가늠이 되지 않아서다. 게다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로 탄핵정국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기업에게 가장 큰 위협은 불확실성이다. 기업에게 있어서 불확실성 증대는 자본과 노동의 조정, 즉 고용과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산업연구원, 2024). 고용과 투자의 위축은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져 기업실적 악화를 불러오고 고용과 투자 위축이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대기업 10곳 중 7곳 내년 투자계획 없거나 아직 못 짜

기업들은 새해 경영전략을 짜는데 고심하고 있지만 위기를 벗어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이다. 각종 경제관련 조사결과는 연일 부정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10곳 중 7곳(68%)은 내년 투자계획이 없거나 아직 수립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조사보다 13%p 높다. 이들은 대내외 리스크 영향 파악과 내년 국내외 경제전망 불투명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내년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들도 투자규모를 올해보다 축소하는 경우가 확대하는 경우의 2배 이상이었다. 지난해는 투자확대가 축소의 세배 가까이 많았다. 30대기업 임원 승진자도 지난해에 비해 10% 정도 줄었다. 대기업은 올해 구조조정 명목으로 임직원들 희망퇴직을 꾸준히 진행했다. 내년도에도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체력이 약한 중소벤처기업 형편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벤처기업 절반 정도는 올해와 비교해 내년 자금사정이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나아질 것으로 예상한 벤처기업은 20%를 갓 넘은 정도다.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조사에서도 이번 내란사태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곳이 26.3%였다. 수출 중소기업 63.5%는 앞으로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사례로 계약지연과 감소 취소가 가장 많았다. 이들은 정부가 앞으로 국가 대외신인도 회복과 환율 안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0~2020년 사이에 정책 불확실성이 높았던 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6~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2019년 말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모든 산업에서 기업단위 불확실성이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대응과 중국경제 활황에 힘입어 한국경제는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박근혜 탄핵정국과 코로나19 대유행 때도 정책 불확실성이 높았다. 다만 기업단위에서는 제조업 부문 불확실성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했고, 반도체 등 IT부문 수요가 급증하면서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내란사태는 정책 불확실성을 해소할 ‘비빌 언덕’이 없어 심각성을 더한다. 우선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경제가 침체상태다. 여기에 트럼프 2기의 관세를 포함한 무역정책도 수출주도의 한국경제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멕시코에 투자한 모 업체 관계자는 “트럼프의 관세인상 발표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절실하다”며 “12.3 내란사태가 서둘러 정리되지 않아 대응이 늦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 등 정부 기능 공백은 정부 간 거래 특성이 강한 방위산업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정부와 ‘2차 계약’으로 K2 전차 820대 추가 구매협상이 진행중이지만 비상이 걸렸다. 방산이슈 등으로 방한 일정을 잡았던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스웨덴 총리가 이번 내란사태로 일정을 취소했다.

탄핵정국 장기화 조짐에 기업들만 죽을 판

기업들은 탄핵정국이 빨리 마무리돼 정책 불안정성이 해소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피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한날한시가 급하기 때문이다.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반도체특별법은 통과되지 않았다. 주 52시간 적용 제외 조항에 대해 여야 간 이견이 있어서다. 반도체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미래성장동력을 육성하고 내수를 진작시키는 경제정책 추진도 시급하다. 위기의 한국경제를 일으킬 또다른 축으로 벤처기업 활성화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우리 벤처기업이 다시 한번 한국경제의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도록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을 요청한다”고 했다. 이 모두가 정치적 정책적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탄핵정국이 장기화되면 공염불이 돼 버린다. 결국 탄핵정국 불확실성에 기업만 고사하게 생겼다.

범현주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