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중대재해 감소를 위한 수사와 판결
12.3 계엄사태로 대한민국은 국가 고위 권력의 엄청난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계엄의 타당성은 논외로 그 파장은 선포자도 제대로 상상하거나 감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건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은 발생 위치에 따라 크게 다르다. 위치에너지 문제다.
롯데타워 크기의 돌이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장관으로 보고 넘길 수 있는 사건이나, 아포피스로 명명된 유사 크기의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은 인류 멸절 수준의 재앙이어서 천체 물리학자들이 발생 확률과 대응을 연구하고 있다.
계엄에 관한 재판부의 판단은 향후 국가 최고 권력 행사로 인한 국가적 손실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중대재해 수사와 판결은 기업 경영 차원에서 안전확보 활동 내용과 방향성을 가르는 갈림길이 되므로 장차 발생될 중대재해 방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안전선진국과 우리나라 안전 수준 격차가 발생되는 원점이 이 부분이다.
수사, 생산현장과 법 제정 취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잘 짜여진 작업계획은 안전 확보에 유용하나 사고 후에 보면 완벽한 작업계획은 없다. 결과 관점에서 작업계획을 사고 원인에 해당하는 위반으로 적시한 중대재해 판결은 작업계획을 중대재해 수사의 최우선 항목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많은 재해 예방 예산이 작업계획서 마련에 소모되고 있다.
계획서 내용을 문제 삼은 수사는 작업계획에 재해 예방과 무관한 개인 성명까지 기재하게 만들었고, 수사에서 계획서의 명단과 작업자가 다름을 문제삼기도 한다. 이처럼 수사의 부적절한 위반 적용은 재해 예방이 아닌, 발생에 기여하게 된다. 작업계획은 그 자체가 매우 포괄적일 수밖에 없어서 권고라면 모를까 법규로 정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지 싶다.
지반 토사를 덤프트럭에 상차하는 굴삭기에 유도자가 끼어 사망한 사고가 발생됐다. 당시 유도자의 역할은 작업 반경 밖에서 상차 작업 중인 트럭과 굴삭기 운전 신호였다. 사고는 작업대기 중인 굴삭기의 작업 반경 내로 유도자가 진입한 상태에서 굴삭기가 작동해 발생됐다.
유도자는 굴삭기가 정지 상태에 있을 것으로, 운전자는 유도자가 작업 반경 외에 있을 것으로 인식했을 상황이다. 작업자의 잔업 반경내 진입 금지와 유도자의 신호에 따른 기계 운전이 규범돼있는 지부터 살펴볼 사고다.
해당 사건 수사에서 상차작업에 활용된 트럭과 굴삭기 각각의 유도자를 배치하지 않은 것에 위반 혐의를 뒀다. 물론 운전 중인 건설기계에 작업자들의 접근 방지를 위해 유도자를 배치하도록 한 안전규칙이 있어서 합법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운전자가 서로 다른 기계의 조합에서 각각의 기계에 유도자를 배치하는 것은 유도자 간 신호 불일치로 인한 사고 위험이 추가될 뿐이다. 산업안전 감독이나 점검에서 그런 지적은 하지 않는다. 더구나 해당 규칙은 기계 작업 반경내로 다른 작업자의 진입 방지를 위한 유도자 배치를 정한 것이어서 위반 적용은 해당 규칙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사고 발생 생산현장과 관련 산업안전 법규에 관한 수사관의 이해 부족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와 같은 위반 적용은 그 자체로도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처벌까지 됐더라면 장차 재해 발생에 기여했을 것이나 다행히 해당 사건은 불기소 처분됐다.
위반 적용, 사고 전 점검의 합리적 지적 수준으로
사고의 법적 책임은 결과가 아닌 위반에 물어야 한다. 그런데 사고 현장에는 누군가 사고결과를 책임지고 처벌받아야 할 것 같은 심리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인간의 본성적 심리에 기반한 이 분위기는 재해 수·조사의 합리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여기에 수사의 재량권 오남용이 더해지면 수사는 마녀사냥과 같은 범죄로 변질되고, 생산현장의 안전확보 활동을 엉망으로 만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선진국들은 미국 에너지부(DOE)의 경우처럼 이 오류를 배제하기 위한 절차를 사고조사 매뉴얼에 강제하기도 한다.
이 오류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당국의 조치에 앞서, 산업재해 수사 시 위반 적용을 사고 전 안전점검에서 합당한 지적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 이에 따라 드러나는 법규의 한계와 불비는 법규 정비로 해결할 일이다.
사고 전 안전점검에서 지적하지 않을 사항을 수사에서 위반을 적용하는 것은 수사 재량권 오남용이고 재해 증가 요인이다. 그것이 타당하다면 산업안전 감독 역시 결과적 책임을 물어야 하지 싶다.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