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문화가 법이 되기까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김 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부국으로 우뚝서기보다는 문화강국이 되기를 더 바랐다. 그랬던 백범 선생이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보면 절망과 희망이 교차할지도 모르겠다.
K-팝, K-드라마, K-영화, K-문학 등 K-콘텐츠로 전세계에 감동과 행복을 안긴 대한민국에서 ‘한없이 낮은 수준의’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과 동시에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자부심을 안고 살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냈음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내란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반헌법적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은 법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교묘한 법기술로 지연전술을 펼치고 있다.
내란 주동자들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이며 많은 이들을 분통터지게 만들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은 누구보다 성숙하고 우아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회로 몰려와 경찰과 군인에 맞섰던 시민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외치며 응원봉을 들고 모여 국회 앞 집회를 축제의 장으로 만든 이들, 그리고 또 지난 주말에는 체포에 불응하는 대통령을 규탄하며 밤새 내린 눈에도 아랑곳 않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김 구 선생이 바라던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은 역설적이게도 이번 내란사태를 통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은 어느 새 우리들 사이에 와있었다. 이제는 이 문화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시스템을 손봐야 할 시간이다.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상대에 대한 악마화가 거침없어진 현재, 우리는 과집중된 권력이 만든 뒤틀린 모습을 맞닥뜨렸다. 이제는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가 막을 내릴 때가 된 것이다. 최근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들에서도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답변 비중이 높다.
대통령 간접선거를 직접선거로 바꾼 1987년 제9차 개헌이 이뤄진 후 37년이 지난 2024년까지 새로운 헌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480달러에서 3만3745달러(2023년)로 10배 늘었다. 3000달러 시대의 법이 3만달러 시대의 문화를 담아내기는 역부족이다.
이번 탄핵집회는 3000달러 시대의 엄숙하고 무거운 집회가 아니라 재기발랄하고 즐거운 집회였다. 새롭게 바뀐 집회 문화에서, 또 2030의 응원봉에서 빛과 희망을 본다. 이제는 새로운 ‘높은 문화’를 담을 새 그릇을 만들 때가 됐다.
박소원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