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민간위탁사업 ‘회계감사 무력화’ 전국 확산 우려

2025-01-13 13:00:03 게재

서울시·경기도 이어 경북도의회도 … 감사규정 없애는 조례 개정안 발의

현재 11개 광역자치단체에서는 회계감사 … 서울시 다시 감사로 변경 추진

서울시의회가 민간위탁사업에 대해 회계감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내용의 조례 개정 이후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조례 개정에 나서면서 전국 지자체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회계 감시망이 무력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정부에 따르면 경기도의회와 경상북도 의회는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사무위탁 조례 일부 개정조례안을 발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개정조례안은 민간위탁사업비 결산서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변경해서 검사인에 세무사(세무법인)를 추가하는 내용이다. 경상북도 의회 역시 민간위탁사업비 결산서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변경하고 검사인의 범위를 규칙으로 정하는 내용의 개정조례안이 발의됐다.

지난해 12월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개정조례안을 부결했지만, 다시 수정 보완해서 다음 회기에 발의하는 내용의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광역자치단계의 민간위탁사업 규모는 작게는 1000억원, 많게는 1조원에 육박한다. 서울시의 경우 2023년 민간위탁사업수는 345개 사업규모는 9424억원에 달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146개 사업에 규모는 1200억원이다. 전국 지자체 민간위탁사업비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민간위탁을 통한 공공서비스 제공은 민간기관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활용해 정부의 한정된 재원과 인력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마련돼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규모가 커지면서 서울시는 2014년 민간위탁사업의 자금 집행에 대한 투명성 확보를 위해 회계감사제도를 도입했다. 경기도와 부산시, 대구시 등 주요 광역자치단계들도 잇따라 관련 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현재 11개 광역자치단체에서 민간위탁사업에 대해 회계감사를 하고 있다.

◆국고보조금 1억원 이상 사업도 회계감사 의무화했는데 = 하지만 서울시의회는 2022년 조례 개정을 통해 민간위탁사무 수탁기관의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변경 하면서 감시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 사업비 결산서 검사는 회계감사 절차를 간소화한 것으로 세무사(세무법인)도 업무가 가능해졌다.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 의장을 상대로 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2023년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1억원 이상 받은 사업에 대해 의무적으로 외부 감사를 받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는 등 회계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간 셈이다.

구재이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전국 모든 지자체의 민간위탁 검증권을 완성하고, 국가·지자체 보조금 정산검증권을 확보해 공공성 높은 세무전문가 세무사를 명실공히 국민의 혈세낭비를 막는 세출검증전문가로 우뚝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세무사의 역할과 회계사의 회계감사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외부감사법이 별도로 존재하고 회계감사를 독립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위탁사업에 자금이 집행되면 수입과 지출이 모두 기록되는 일종의 회계 장부가 만들어진다. 영수증 처리만 보는 게 아니라 물건을 구매하면 원가가 적정한지, 매출 부풀리기가 없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원가회계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또 부정수급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지출 가운데 특이점을 찾아내 문제가 되는 건을 적발할 수 있는 회계감사의 기술과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민간위탁사업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바꾸는 조치는 점차 정착돼 가고 있는 회계감사 시스템을 붕괴 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통제 시스템을 사실상 마비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회 “사후검증 절차 강화 필요” 다시 조례 변경 나서 = 민간위탁사업을 회계감사가 아닌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조례 변경을 한 서울시의회는 다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서울시의회 임춘대 기획경제위원장은 ‘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사업비 결산서 검사’ 관련 규정을 삭제하고, 이를 회계감사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임 위원장은 “수탁기관의 민간위탁 사업비 사용내역 등에 대한 사후검증 절차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이러한 내용을 반영해 조문을 정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개정 조례안은 이날 기획경제위원회 의결을 마치고 본회의에 올라갔다. 올해 2~3월 중 본회의에서 안건 처리를 논의할 예정이다. 같은 취지로 허 훈 의원이 2022년 발의한 조례개정안은 ‘현행 조례의 상위법령 저촉 소지’를 주요 개정사유로 제시했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라 상위법령 저촉 소지가 해소되면서, 임 위원장이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해 다시 개정조례안을 발의한 것이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주주의 자금을 경영자가 잘 운영하고 있는지 신뢰성을 담은 보고서를 자본시장에 내놓는 게 기업의 회계감사라면, 지방자치단체들은 국민의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 확인해서 보고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국민의 혈세 집행의 경우 기업보다 더 엄격하게 들여다봐야 하는데 외부감사를 강화하고 있는 자본시장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회계를 아는 것과 감사의 영역은 별개”라며 “감사 전문성과 합의된 감사절차(인증), 사후관리가 모두 가능한 집단에서 회계감사를 하는 게 맞고, 단순히 재무제표가 맞는지 확인하고 도장 찍어주는 수준의 검사가 이뤄지면 내용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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