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훈 칼럼
환율과 트럼프 2기 이중고를 넘기 위한 에너지정책
지난해 11월 29일의 환율은 1달러당 1396.5원이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이 오르기 시작해 1470원을 넘었다. 곧 1500원이 뉴노멀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2022년 기준 94.4%로 세계 최고 수준이기에 환율상승은 에너지 부문에 직접적인 고통을 준다.
우리가 가장 많이 수입하는 에너지는 석유다. 석유의 대략 절반이 수송용 연료인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석유제품으로 만들어져 65% 정도가 수출되고 나머지 35%가 국내에서 소비된다. 지금까지는 환율이 급등해도 국내 정유산업은 기술 및 가격경쟁력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부닥쳤다.
정유산업은 석유의 나머지 절반으로 나프타를 만들어 석유화학산업에 필요한 에틸렌의 원료로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수요 감소와 중국 인도의 저가공세로 인해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했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해 12월 23일 구조조정을 포함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고 정유산업의 위기도 초래되고 있다.
사실 지난해 3분기까지 적자를 기록한 국내 정유사들은 석유제품의 계절적 성수기인 겨울을 맞이하면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환율 급상승으로 적자는 더 커지고 있다. 석유 수입량 세계 제6위의 우리나라는 연간 10억배럴 이상을 달러화로 구매하고 있기에 환율이 상승하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환율 리스크에 가격 리스크까지 겹쳐
우리의 미국산 석유 수입 비중은 트럼프 1기 출범 직전인 2016년 0.2%에 불과했지만 트럼프 1기(2017~2021년) 후 13.5%로 늘었다. 현재 중동산 석유 수입 의존도가 80%에 달하기에 트럼프 2기는 미국산 석유 구매 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산 석유의 수송기간은 50~60일이라 중동산 석유의 수송기간 21~22일 대비 2배나 길어 이런저런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게다가 국내 정유산업은 중질유인 중동산 석유에 특화되어 있다. 경질유인 미국산 석유를 활용해 석유제품을 생산하게 되면 비용이 추가로 든다. 중동산 석유 수입의 감소는 중동 원전수출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 결국 통상압력으로 미국에서 에너지 수입을 늘려야한다면 그 대상은 석유가 아닌 천연가스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2023년 물량 기준 액화천연가스(LNG) 주요 수입국은 호주 카타르 말레이시아 미국 순이다. 점유율은 각각 23.6%, 19.5%, 13.9%, 11.6%다. 또한 우리나라는 LNG 수입액 세계 3위로 국제 LNG 시장에서 큰손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량을 늘릴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환율이다. LNG 수입의 78%를 담당하는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환율이 10원 오르면 연간 약 500억원의 환손실이 발생한다. 이미 14조5000억원을 넘은 미수금은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LNG로 만든 전기를 구매해야 하는 한전의 경우 환율이 10원 오르면 부담이 약 2000억원 늘어나니 44조원의 누적적자는 더 커질 것이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1월 1일부터 러시아의 전쟁 자금 마련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자국내 천연가스 배관을 잠가버려 유럽 내 천연가스 공급량이 크게 줄었다. 이에 유럽은 부랴부랴 미국산 LNG 수입을 늘려 미국의 LNG 업계는 호황을 맞이했다. 트럼프는 LNG를 더 많이 생산해 수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유럽에서 LNG 수요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확산 및 암호화폐 붐에 힘입어 글로벌 전력수요가 늘어나 발전용 LNG 수요까지 늘어나고 있다. 이에 LNG 가격은 지난해 44%나 올랐고 더 오르는 중이다. 특히 아시아로 오는 LNG 가격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환율 리스크뿐만 아니라 가격 리스크에도 직면해 있는 셈이다.
사실 LNG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에너지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소비된 전기의 약 29%는 LNG로 만들어졌다. LNG 발전은 대표적인 분산형 에너지로 재생에너지나 원전과 달리 경직적이지 않고 유연하다. 도심 지역의 도시가스와 지역난방 원료 또한 LNG이기에 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산 에너지 수입 늘려야 되면 LNG로
요컨대 우리는 환율과 트럼프 2기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는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둘러 강건한 에너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탄핵정국이라도 에너지정책 당국과 업계가 머리를 맞대 지혜를 모으면서 의사결정을 하고는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 미국산 석유 수입 확대는 최소화하면서 미국산 LNG 수입을 대폭 늘려 실리를 챙겨야 한다.
더 나아가 공기업-민간기업 또는 민간기업들끼리의 미국산 LNG 공동구매에 근거한 협상을 통해 도입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세계 2위의 LNG 수입국인 일본 기업들과도 함께 공동구매를 추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협력을 이끄는 역할을 해줘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올해는 한일수교 60주년이라 분위기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