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불타는 LA,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에서 산불이 확산하면서 10일 현재 LA 카운티 내 5건의 산불이 지속되고 있다. 필자의 사무실은 산불지역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데도 연기냄새가 상당하고 음산한 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다.
다행히 할리우드 인근에서 발생했던 선셋 산불은 완전히 진화됐고, LA 북부 샌퍼넌도 밸리에서 발생한 허스트 산불과 LA 북단 매직마운튼 인근에서 발생한 리디아 산불은 진정세를 보인다. 하지만 서부 해변의 퍼시픽 팰리세이즈 산불은 12일 현재(현지시간) 진압률 11%, 한인들의 주요 거주지 인근인 LA 동부 알타데나에서 발생한 이튼 산불은 진압률 27% 정도다.
캘리포니아주를 휩쓸고 있는 팰리세이즈와 이튼의 산불은 LA 카운티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산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웰스파고는 이번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총 600억달러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JP모건은 이번 화재 관련 보험 손실액만 2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화재가 계속 잇따르고 확산하면서 LA 카운티 내에서 현재 대피령을 받은 주민은 총 15만3000명이고, 위협을 받는 건물도 5만7830채에 달한다. 이날 LA 카운티 내 8만7000가구에 전기공급이 끊겼다.
사상 최악의 산불과 말라버린 소화전
할리우드 스타들과 재력가들이 많이 사는 부촌 산타 모니카 서쪽의 퍼시픽 팰리세이즈 화재는 7일 밤 발생해 하루 후 1만7000에이커 이상으로 빠르게 커졌다. 이 산불로 역사적인 건물과 랜드마크를 포함 최소 5300채 이상이 소실된 것으로 집계됐다. 1944년 주립공원이 된 배우이자 사회 평론가 윌 로저스의 유서깊은 저택도 파괴됐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유물을 소장한 게티 빌라는 시설 주변의 덤불 청소 같은 사전 완화조치 덕분에 보존되었다.
2022년과 2023년의 습한 겨울은 팰리세이즈를 둘러싼 언덕을 무성한 초목으로 뒤덮었다. 최근 몇달 동안 강우량이 기록적으로 줄어들어 이 마른 나무와 덤불은 화재의 가연성 연료가 되었다. 이 지역은 과거에도 화재가 발생했지만 이러한 기후현상과 특히 강한 산타아나 폭풍이 합쳐지면서 사상 최악의 파괴가 발생했다.
LA 북동쪽의 앤젤레스 국유림에서 발생한 이튼 산불은 한인들의 주요 거주지 인근인 LA동부 알타데나를 휩쓸어 최소 5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9일 오전 현재 6672채의 건물이 손상되거나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앤젤레스 국유림은 2024년 가을에 발생한 브릿지 산불로 5만6000에이커 이상이 잿더미가 됐다. 현재 이튼 산불 바로 동쪽에 있는 최소 80개의 건물을 파괴했다. 브릿지 화재로 여러 하이킹 코스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튼 화재는 인기 있는 레크리에이션 장소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튼캐년 자연 센터, 판스 워스 공원 및 알타데나 골프 코스의 자원 손실 규모는 꽤 커 보인다. 파사데나가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위치한 마운트 윌슨 천문대는 9일 화재로 잠시 위협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 불길이 통제됐다.
10일부터 풍속이 완화되면서 소방관들은 4일간의 전투 후 향후 화재진압에 절실히 필요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번주에 바람이 다시 불면 산불이 더 악화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더 많은 주택이 불길에 휩싸일 수 있다.
이번 산불이 LA를 휩쓸면서 소방관들이 직면한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물이 없는 소화전이다. 팰리세이즈에서는 각각 100만갤런의 물을 담은 탱크 3개가 12시간 만에 말라 소화전이 고장났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알타데나에서는 주민들이 수영장과 정원용 호스에서 나오는 물로 불을 끄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전했다.
소화전이 말라 있다는 보고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이 지역에 절실히 필요한 물을 빼앗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즉시 북부 캘리포니아로 가서 수도관을 개방하고 건조하고 굶주리고 불타는 캘리포니아주에 물이 흐르게 하라”고 요구했다. 물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의 물 정책이 소화전 고갈의 원인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일축했다. 현재 남부 캘리포니아의 저수지는 실제로 역사적 평균 수준보다 높다.
도시 물 공급 전문가들은 수요 급증과 신속하게 물을 채우기 어려운 요인으로 인해 소화전이 고갈되었다고 말했다. 팰리세이즈, 알타데나 및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다른 지역은 대규모 산불이 아니라 주택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소방서가 설치되는 방식은 집 한두채 또는 한 블록에서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라고 수자원 및 산불 전문가인 컨스는 말했다. 동네 전체를 덮고 있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 지역 도시 지도자, 베테랑 소방관, 수자원 시스템 전문가들은 로스앤젤레스가 점점 더 일상화되고 있는 도시산불을 진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화재 원인 놓고 의견 분분
남부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화재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조사관들이 확실한 결론을 내리려면 몇달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LA지역의 이튼과 팰리세이즈 화재 근처의 전선이 화재가 시작되었을 때 켜져 있었는데, 비정상적으로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조건에서 전력선이 계속 켜져 있는 것은 화재를 확산시키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전기 유틸리티 컨설턴트인 맥컬러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택이 파괴된 팰리세이즈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력회사는 원격전원 차단 시스템을 사용해 전기를 차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틸리티의 전력망이 최대 시속 56마일의 풍속을 견디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기후에서 상당히 낮다”고 덧붙였다. 전력회사가 시속 80마일을 견디는 장비로 업그레이드하고 있지만 이번 주 로스앤젤레스를 강타한 산타아나 바람은 시속 약 100마일에 달했다.
화재예방 조치로 전력을 차단할 수 있지만 LA의 지방자치단체가 이 조치를 꺼리는 일은 드물지 않다. 주요 캘리포니아 유틸리티는 전력차단을 포함한 상세한 산불 예방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력차단 조치는 고객과 선출직 공무원들이 꺼리는 만큼 화재 예방을 위해 이런 조치를 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의 한계
산불에 대한 캘리포니아의 건축 법규는 미국에서 가장 보호적인 법규 중 하나다. 지역 소방서는 40억달러의 예산과 세계에서 가장 잘 훈련된 소방관들을 보유한 주 소방기관 ‘캘파이어(CalFire)’의 지원을 받고 있다. 주의 거대한 세금 기반은 산불보호를 위한 사실상 무제한의 자원을 지원한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위험 지역에 있는 주택 소유자들은 자신의 부동산 주변에 “방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 차원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번 주 일어난 산불은 이러한 노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미국의 어느 지역이든, 심지어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잘 준비되고 가장 경험이 많은 지역조차도 더 뜨거워진 기후 때문에 악화된 산불에 진정으로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제기한다.
주택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설계된 소화전이 고갈되었고 비축된 물이 공무원들이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수요에 직면했다. 주민들이 충분한 경고를 받았는지, 대피 경로가 잘 계획되어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책임 규명에 대한 질문은 불길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와중에도 이미 시작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유틸리티의 전 총괄 관리자이자 40년 동안 이 기관에서 일한 아담스는 “구축된 시스템은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