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탄핵정국의 젠더갈등 실체와 이를 조장하는 세력들
‘형형색색의 응원봉으로 새로운 시위문화를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K-민주주의를 널리 알린 탄핵집회.’ ‘법원을 습격하고 판사에게 테러를 가하려 해 충격을 준 서울 서부지법 폭동사태.’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사태의 핵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두 장면이다. 둘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하나는 시종일관 평화적·건설적으로 유쾌하게 진행돼 국가적 자부심을 남겼다. 다른 하나는 파괴적·불법적으로 기괴하게 자행돼 국가적으로 큰 오점을 남겼다.
양측이 대비되는 또 한면은 주도층에서다. 탄핵집회에서 대다수를 점하며 주도한 것은 20~30대 여성이다. 반면 법원 난동사태의 주축은 20~30대 남성이었다. 같은 시대 비슷한 부모세대 밑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남녀들의 양태가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엇갈리게 됐을까? 이는 내시경처럼 현재 우리 사회의 은밀한 내면을 진단하고 앞날을 내다보게 해주는 핵심 이슈이기에 좀 더 깊이 톺아볼 필요가 있다.
진보 이대녀, 보수 이대남은 세계적 현상
최근 대선과 총선에서 20~30대 여성과 남성의 표심이 극명하게 엇갈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갤럽이 올해 1월 전국 유권자 3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대(18~29세) 남성 중 자신이 ‘보수’라고 응답한 이는 40%로, ‘진보’ 응답자(19%)보다 두배 이상 많았다. 반면 20대 여성 중 ‘진보’는 39%로 ‘보수’ 14%보다 세배 가까이 많았다. 같은 세대인데도 남성과 여성 간에 정면으로 상반되는 분포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만이 아니라 서구 선진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정치학자 멜리사 데크먼은 신간 ‘Z세대의 정치학(The Politics of Gen Z)’에서 현재 미국의 20대 여성은 역사상 가장 진보적 성향을 띠며 정치참여도 가장 적극적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 성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트럼프와 같이 강한 타입의 리더를 선호한다고 한다. 지난 미 대선에서 트럼프 낙선 후 벌어진 의사당 습격사건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데크먼은 Z세대 여성의 진보적 성향과 남성의 보수적 성향 간 갭이 갈수록 크게 벌어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1999년 12%p였던 격차가 2023년에는 23%p로 두배 가까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젊은 남녀 간 이런 정치적 성향 차이는 단순한 ‘차이’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젊은 남성과 여성 간 집단적 대립, 개인간 폭력적 충돌 등 심각한 젠더갈등으로 곧바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2018년 영국 BBC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입소스(Ipsos)가 27개국 약 2만명을 대상으로 사회갈등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계층갈등 부문에서 4위, 세대갈등 부문에서 2위, 남녀갈등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남녀간 갈등의 심각성 인식에서 한국은 80%로 조사 국가들 평균치인 40%의 두배에 달했다.
그런 배경에서 벌어진 것이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여성 혐오와 무차별 공격 현상이다. 데이트 폭력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건들은 결코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젠더갈등이라는 내재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국 젠더갈등 지수, 세계 1위
지식정보사회로의 변화·발전이 가속할수록 여성들의 경쟁력과 주도권이 강해지는 추세다. 반대로 남성들 중 상당수는 경쟁에서 뒤처져 주변부로 밀려나고 새로운 ‘마이너리티 그룹’으로 전락하는 현상이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번지고 있다.
고급공무원의 관문인 행정고시 최종합격자 중 여성의 비중은 2000년에 25.1%였으나 2008년에 51.2%로 절반을 넘어섰다. 2000년 사법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18.9%였으나 2023년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 46.61%로 절반에 육박했다. 전국의 의대 입학생 중 여학생 비중이 1980년대는 10~15%였으나, 2020년엔 55%로 남성을 앞질렀다.
이런 변화는 일상의 생활문화로까지 크게 번지는 추세다. 전통적 남녀관계에 파열음을 내고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실상이 노래와 영화, 소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젊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여성상과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해온 대표적 뮤지션이 비욘세다. ‘미, 마이셀프 앤 아이(Me, Myself and I, 2003)’, ‘이프 아이 워 어 보이(If I Were a Boy, 2008)’, ‘싱글 레이디스(Single Ladies, 2008)’ 등으로 여성들에게 자기주도적 삶을 살 것을 역설하더니 급기야 ‘런 더 월드, 걸스(Run the World, Girls)’(2011)를 부르며 젊은 여성들에게 세계를 이끌라고 외쳤다. 국내 가수 중엔 에일리의 ‘보여줄게’ ‘손대지 마’가 같은 맥락이다.
미국 여가수 마일리 사이러스의 경우 과거 ‘말리부(Malibu)’를 히트시킬 때는 낭만적인 해변에 자신을 데려다준 이에게 고마워했다, 그런데 지난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선 “내가 내 손 잡아주고 나 자신에게 꽃을 사주고 나를 위해 춤출 수 있다”며 ‘플라워스(Flowers)’를 부르곤 마이크를 냅다 던지고 호쾌하게 등돌리며 떠난다. 자신에게 상처주고 떠난 남자에게 보기 좋게 반격하는 퍼포먼스였다는 해석이다.
반면 각박한 현실에 치이고 경쟁에서 밀려나는 젊은 남성들의 좌절감을 담은 노래와 소설, 영화도 대중의 공감을 크게 얻는다. 방탄소년단(BTS)의 ‘뱁새(Silver Spoon, 은수저)’가 대표적이다. “알바 가면 열정페이, 상사들은 행패, 언론에선 맨날 몇포 세대. 이건 정상이 아냐, 아, 노력 타령 좀 그만 둬. 내 탓이라니? 너 농담이지 공평하다니? 이게 정의라니?”하고 항변하는 노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현대 젊은 남성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외로움을 예민하게 그려내 베스트셀러가 됐다. 2020년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조커’는 젊은 남성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분노, 소외되고 밀려나는 개인의 심리를 강렬하게 드러내 젊은 남성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주인공 아서 플렉이 경제적 불평등과 좌절 속에서 점차 폭력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대목이다.
젠더갈등 악용하는 이가 바로 반국가세력
다른 갈등과 달리 젠더갈등은 근본적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결이 아닌 예방과 적절한 관리를 통해 갈등을 완화하고 파괴적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젠더갈등을 보는 프레임과 접근법도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스웨덴은 포괄적 성평등 정책과 ‘펨밸런스(FemBalance)’라는 캠페인을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흔히 여성정책이나 성평등정책 때문에 젠더갈등이 심화된다고 하지만 이는 착시현상이거나 왜곡된 선동일 뿐이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등 성평등지수 상위권 국가일수록 젠더갈등이 적은 것으로 보고된다.
젠더갈등을 악화시키는 최대의 적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남녀 간 단층선을 교묘하게 파고들고 양측의 이해관계를 쥐고 흔드는 정치인과 모리배들이다. 이들이 갈등의 속성을 악용해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표를 훔칠 목적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행위는 엄격히 처단되도록 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그런 자들이 바로 불순분자이고 반국가세력임을 명심하고 함부로 표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양극화가 심각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보수적 성향의 젊은층이 안심하고 의탁할 수 있는 합리적 보수, 건전한 우익을 형성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힘든 현실에서 신음하는 젊은이들이 일부 극단주의적 상업적 종교세력, 유튜브 장사꾼, 얍삽한 정상배들에게 휘둘리거나 선동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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