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비상계엄과 민주주의, 그리고 기초과학

2025-02-14 13:00:06 게재

필자는 예쁜꼬마선충을 소재로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는 연구를 해 온 생물학자이다. 올해는 연구실 설립 30주년이고 정년도 2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일생 동안의 연구를 되돌아보면서 정리도 하고 전망도 해야 할 때라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전공과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사실은 깊숙하게는 서로 뿌리가 연결되어 있는 일이기도하다.

추운 겨울 밤, 느긋하게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정규 프로그램이 중단되면서 돌연 자막이 뜨고 대통령이 화면에 등장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국가전복세력을 일거에 소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2024년 12월 3일의 일이다,

필자는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몹시 불안해졌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1980년, 그해 5월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다는 뉴스를 보고 기숙사에서 잠들었던 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새벽 4시쯤 되었을까, 온몸이 욱신거리듯 아파서 눈을 떠 보니 동그란 구멍이 보였다. 그 구멍이 총구였음을 깨닫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계엄군이 필자 방에까지 들어와 마구 때리면서 “일어나 이 XX야” 라고 소리쳤다. 기숙사에 있던 모든 야구방망이가 부러졌고 학생 1/3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맞았다. 고학년 학생들은 모두 어디론가 잡혀 갔다. 학교가 폐쇄되었고 자유로운 활동이 정지되었다.

비상계엄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그런 비상계엄이 2024년 필자 눈앞에 또 벌어지다니. 뒤에 알게 되었지만 유명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국회를 정지시킨 후 비상입법기구를 만들어 이상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1980년의 부활을 꿈꾸고 있던 끔찍한 순간이었다.

모든 사람의 일상 흔들어놓은 비상계엄

2024년 가을, 전국 대학에서 교수 시국선언이 터져나왔다. 화살은 모두 대통령 부부를 향했다. 여러 특검법이 발의되었고 거부되고 있었다. 정치 브로커의 폭로가 터져나왔고 정국은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대에서는 시국선언이 아직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결정적인 순간 또는 필요한 순간에 나름 적절하게 시국선언으로 길잡이 역할을 조금이라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기자들과 다른 학교 동료들로부터 “서울대는 뭐하고 있냐”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갔냐”는 비아냥이 터져나왔다.

뜻을 함께 하는 몇몇 교수들과 함께 시국선언을 조직하기로 했다. 논의는 여러날 했지만 실행을 결정하고서는 하루이틀 만에 성명서 초안 완성과 수정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동료 교수 및 연구자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이메일을 돌렸다. 이런 작업은 대학의 공식 활동이 아니어서 단체 메일망을 쓸 수가 없어서 알음알음으로 여러 선생님들이 참여해 해낼 수밖에 없었다. 11월 28일 첫 서울대 시국선언이 발표되었다. 무려 590여명의 교수 연구자가 동참했다.

그런 와중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필자에게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44년 전에도 수많은 대학들 중에서 유독 서울대 관악캠퍼스에는 다른 일반 부대가 아닌 공수부대가 계엄군으로 투입되었고, 수많은 학생 교수들이 붙잡혀 갔다. 대학시절 당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온 필자에게 불안감은 실존적 문제였다. 순간 차는 주유를 해놨는지, 어디로 가야 안전한지 하는 생각들이 스쳤다.

그러던 와중에 국회에서 극적으로 비상계엄 해제 안건이 가결되었다. 국회의장의 의사봉 세번 두드리는 과정이 왜 그리도 오래 걸리는 듯이 느껴졌던지. 무슨 일이 있어도 헌법 상 이제 비상계엄은 무력화되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두번째 시국선언이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무려 890명이 넘는 서울대 교수와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한차례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되었다. 그리고 다시 12월 12일 오후 2시에 세번째 시국선언을 했다. 이번에는 여의도에서였다. ‘아스팔트 우파’의 엄청난 출력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온갖 욕설을 뚫고 우리는 메가폰 하나 없이도 뚜렷하게 탄핵 인용만이 해결 방법임을 외쳤다. 그날 오전 궤변으로 가득 찬 대통령의 담화가 있어서 더욱 엄숙한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이틀 후 12월 14일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많은 이들이 안도했다. 그러고도 두 달 가까이 지나서 기소가 이루어졌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 땅의 정의와 상식은 그래도 살아 있었다.

그 사이에 다양한 단체와 조직들에서 시국선언이 터져 나왔다.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과 학부생들이 비상계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현재의 부당함을 알리는 명문의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개인들도 나름의 생각을 담아 대자보로 게시했다.

그중에서도 필자의 눈에 들어온 하나의 시국 선언문은 수리과학부 학생들이 낸 시국선언이었다. 정확히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수학 연구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의 지원이란 세금으로 되는 것인데, 세금을 내는 시민들이 그 정부를 인정해야 수학 연구에 대한 지원도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위헌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발동하고 내란을 획책했으니 시민의 신망을 잃었고 따라서 우리의 수학 연구지원의 명분도 잃었다. 우리가 모든 과학기술의 바탕이 되는 수학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져야 한다.” 비상계엄이란 이렇게 모든 사람들, 심지어 수학 학도들의 생활까지도 뒤집어 놓는 일이었다.

민주주의 지켜야 과학연구도 지킬 수 있어

2024년에 벌어진 느닷없는 정부 R&D예산 삭감 사태를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그것이 바로 과학기술계에 대한 비상계엄이었다. 우리 머릿속에는 없었지만 그의 머리 속에 “비상대권 발동으로 일거에 카르텔을 뿌리 뽑고 과학기술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말도 안되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응해 순식간에 국회로 달려가서 비상계엄 해제를 이루어낸 시민들처럼 우리 과학기술계가 그때 R&D 삭감이라는 비상조치에 단호히 반대하고 일어섰다면 그 후에 벌어진 비상계엄 자체도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자책을 하게 된다.

소극적인 저항 내지는 읍소를 통해 해결하려 했으니 상식적이지 않은 상대에게 상식적인 방식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 꼴이었음을 지금 알게 된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과학연구도 지킬 수 있다.

민주주의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한 뿌리다. 아름드리나무도 깃털처럼 가벼운 싹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고 어떤 싹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랄지 모르기 때문에 수많은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야 그 중에서 아름드리나무가 나오는 법이다. 씨앗도 심지 않고 아름드리나무를 기대한다면 그런 엉터리 기대가 또 있겠는가. 이는 기초과학이나 풀뿌리 민주주의에 다 적용되는 상식적인 이치다.

새 정부는 예측가능한 정책 수립하길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다양한 크고 작은 기초과학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다양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기초과학도 다양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주주의가 기초과학을 꽃피게 할 것이다. 여기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예산을 배정하는 정부와 국회가 투자 대비 효과가 부족하니 투자를 더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라는 인식을 가진다면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봄이 오면 새로운 정부가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하겠지만 잊지 않아야 할 것은 그 새 부대에 술이 아니라 독을 담아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정부의 기초과학 R&D 정책에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상식에 근거한 예측가능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다시는 비상계엄이 아니라 상식에 기초한 기본에 충실해야 함을 더욱 간절하게 느끼게 되는 새로운 날이다.

이준호 서울대 교수 자연과학대 생명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