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이어 신약개발도 세계 놀래켜
이코노미스트 “저렴한 가격, 신속한 임상시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의약품 중 하나다. 미국 제약사 머크가 2014년 출시한 이후 130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매출만 295억달러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그보다 효능이 뛰어난 약물이 새로 나왔다. 비소세포폐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환자가 질병 악화 없이 생존한 기간이 11.1개월로 나타났다. 키트루다 5.8개월의 약 2배다. 이 연구를 주도한 제약사는 중국 ‘아케소(Akeso)’였다. 아케소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치료의 여신이다.
최근 중국의 인공지능(AI) 발전이 전세계를 놀래켰지만 생명공학분야에서도 그같이 중요한 변화가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17일 온라인판 기사에서 “중국은 오랫동안 복제약을 생산하고 원료를 공급하며 임상시험을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하지만 이제 중국은 저렴하면서도 혁신적인 의약품을 생산하는 등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신약개발국으로 발돋움했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서구 제약사들은 점점 더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은 2020년대 말이면 의약품 특허 만료로 연간 1400억달러에 이르는 매출 손실을 입을 위기에 처했다. 때문에 그에 앞서 속속 라이선스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선불금과 수수료, 로열티 등을 주고 의약품 판매권리를 사들이는 계약을 말한다.
컨설팅기업 LEK에 따르면 서구 제약사들이 지난해 체결한 5000만달러 이상의 대형 라이선스계약 중 약 1/3이 중국 제약사들과 이뤄졌다. 2020년의 3배에 달하는 비중이다. 액수는 더 놀랍다. 지난해 중국 제약사들이 서구 기업들에 라이선싱한 의약품 총가치는 480억달러로, 2020년 대비 15배 늘었다. 대표적으로 머크는 지난해 11월 아케소 항암제와 유사한 치료제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생명공학사 ‘라노바 메디신스(LaNova Medicines)’에 5억8800만달러를 지불했다.
중국정부는 약 20년 전부터 생명공학을 전략적 우선순위로 정했다. 본격적인 개혁은 2015년부터 이뤄졌다. 2년 만에 2만건에 달하는 의약품 신청 적체상황을 해소했다. 임상시험을 간소화하고 글로벌 표준을 따랐다. 베이징대 이민 쿠이(Yimin Cui)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드럭 디스커버리’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개혁 전 평균 501일이 걸리던 첫번째 인간 임상시험 승인 기간이 87일로 단축됐다.
이러한 개혁과 맞물려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일했던 중국 과학자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노하우와 인재가 풍부해졌다. 또 상장규정이 완화되면서 바이오테크 투자자들이 보다 쉽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중국 바이오테크에 대한 민간자금은 2016년 10억달러에서 2021년 134억달러로 급증했다.
더 많은 두뇌와 자금으로 중국 제약사들은 서구 의약품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특허가 만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일한 효능의 복제약을 만드는 대신, 이미 알려진 약을 가져다가 안전성과 효능을 개선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으로 훨씬 적은 비용과 빠른 속도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개발중인 의약품 수는 4391개로, 2021년 대비 2배 증가했다. 그중 패스트 팔로워 및 완전 오리지널 치료제가 약 42% 비중이다.

LEK에 따르면 중국의 접근법은 특히 ‘항체-약물 접합체(ADC)’ 항암제 개발에 효과적이다. ADC 항암 치료의 핵심 구성요소는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결합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LEK는 이 지점에서 중국 기업들의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아케소 창업자 미셸 샤는 중국의 장점으로 속도를 꼽았다. 그는 “우리는 전세계 어느 곳보다 2배, 심지어 3배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신약 개발에서 비용이 가장 많이 들고 진행이 더딘 단계가 임상시험이다. 중국에서는 환자 모집이 용이하고 병원과 의사는 정부로부터 연구 지원 인센티브를 받기에 서구에 비해 임상시험 진행이 더 빠르다. 빠른 임상시험은 글로벌 제약사들에겐 더할 수 없는 매력이다.
게다가 중국 임상시험 데이터 품질이 향상됨에 따라 다른 국가들의 규제당국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아케소의 임상시험 결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해당 약을 후기 임상시험으로 바로 옮기도록 설득할 만큼 강력했다.
미국에서 직접 약을 판매하는 중국 제약사는 거의 없다. 대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다. 머크의 키트루다와 경쟁하는 아케소 항암제는 미국 바이오기업 ‘서밋 테라퓨틱스’에 선불금 5억달러, 로열티 최대 50억달러 등 55억달러에 라이선싱됐다 .
또 다른 거래방식은 ‘뉴코(NewCo)’ 모델이다. 중국 제약사가 임상자산을 별도의 미국법인으로 분사해 미국 현지 경영진에 운영을 맡기는 방식이다. 모기업은 소유권 일부를 갖고 신약이 성공할 경우 로열티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투자은행 제퍼리스는 지난해 5월 이후 약 8개의 뉴코 기업이 미국에 설립된 것으로 추산한다.
중국 바이오테크 호황에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동안 미국의 무역제한은 주로 첨단기술 제품에 적용됐다. 중국 바이오테크 부문은 이를 피할 수 있었다. 중국 제약사들이 미국에 생명공학 서비스 및 장비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은 미의회에 계류 상태로 있다.
하지만 트럼프 2기정부에서는 안심하기 어렵다.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미국에 판매하는 방식도 제한적인 보호만 받을 수 있다. 이미 지정학적 위험을 감지한 중국 생명공학기업들은 미국 기업들에게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저렴한 라이선스 비용을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의 바이오 혁신 속도는 인상적이다. 하지만 향후 강력한 지정학적 힘에 맞서 싸워야 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